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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 김재환 “Another” 쇼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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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김재환의 솔로 데뷔 쇼케이스가 있었다. 워너원 활동 종료 후 다른 멤버들이 개인활동을 서두른 것에 비해서는 조금 늦은 행보다. 그룹이 아닌 솔로 데뷔인 데다가, 전언에 따르면 작년 겨울부터 작업에 착수했음에도 미니앨범을 들고 나오기까지 반 년의 시간이 걸렸다. 김재환은 “어렸을 때부터 싱어송라이터에 대한 욕심과 꿈이 있어서 연습을 많이 해왔었다. 이번에 기회가 되어서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저만의 색깔을 담은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하며 짧지 않았던 준비 기간을 설명했다. 수록곡 전곡 작사/작곡에 이름을 올린 크레딧에서 솔로 가수로서의 첫걸음을 신중히 떼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쇼케이스에서는 ‘안녕하세요’와 ‘Designer’ 두 곡을 공개했다. 타이틀곡 ‘안녕하세요’는 옛 연인과의 추억을 돌이키며 처음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발라드 곡이다. 임창정이 선물한 곡으로 그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가창력을 부각시키는 멜로디라인과 뚜렷한 기승전결이 특징이었다. 스스로 목 컨디션 관리가 걱정된다 언급했을 정도로 고난이도의 곡이지만, 이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무결점 보컬이 돋보였다. ‘Designer’는 훵키(funky)한 리듬을 살린 댄스곡으로 정반대의 매력이 돋보였다. 재기발랄한 안무와 함께 시원시원한 고음을 난사하는 퍼포먼스는 ‘순얼방음’이라는 칭호를 안겨준 〈프로듀스 101〉 시즌2의 ‘Sorry Sorry’ 무대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극명히 대비되는 두 곡을 선보였기 때문에 이어진 기자 질의응답 시간에는 이에 관한 궁금증이 줄을 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아티스트’와 ‘아이돌’ 사이 방향성 설정에 관한 질문이 비중 있게 다뤄졌다. 고루한 구분법이긴 하나 솔로 가수로서 어떤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지에 대한 많은 이의 호기심이 쏠린 질문이었다. 본래 싱어송라이팅 ‘아티스트’를 꿈꾸다 ‘아이돌’로 전향을 한 데다가, 퍼포먼스가 부각되는 ‘아이돌’ 성향의 노래와 음악 자체에 집중하는 ‘아티스트’ 성향의 노래를 하나씩 선보였기 때문이다. 김재환은 “(어느 한 쪽으로) 굳이 정하고 싶지는 않다”고 밝히며 “워너원을 할 때 많이 배우며 성장했고, 끝나고 이를 없애고 싶지 않았다. 그때 갖고 있던 감성이 좋아서 그대로 가지고 가려고 노력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평생 아이돌이고 싶다”고 답했다. 또한 “워너원을 하면서 춤도 너무 재밌었다. 원래 싱어송라이터를 꿈꿀 때도 브루노 마스(Bruno Mars) 같은 훵키하고 블루지한 느낌(의 음악)을 하고 싶었었는데, ‘그때가 있었기 때문에 춤에도 이렇게 흥미를 가지고 열심히 할 수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오히려 지금은 (워너원 활동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하게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어서 더 재밌고 또 편하다.” 그의 대답에서 그에게는 이분법의 효력이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정) 장르에 한정되어 있기보다는 여러 가지를 다 보여드리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도 많은 장르를 연습해왔다”는 그의 말에서 이번 미니앨범 제목 “Another”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코리아 갓 탤런트 2〉부터 〈신의 목소리〉, 〈프로듀스 101〉 시즌2, 〈불후의 명곡〉까지 가지각색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거치며, 브루노 마스 같은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던 시절부터, 밴드 버스킹을 하던 대학시절, 댄스팝을 소화한 워너원 시절을 거치며 쌓아온 다채로운 자양분을 근거로 ‘또다른’ 자기상을 계속해서 선보이려는 포부가 바로 “Another”에 담긴 의미가 아닐까. 먼 길을 돌아 솔로로서 가수 인생의 ‘또다른’ 막을 열어젖힌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다시 시작해 ‘안녕하세요’란 말부터.”

취재: 스큅

김재환
Another
스윙 엔터테인먼트
2019년 5월 20일

   



1st Listen : 2019년 4월 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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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첸, 아이즈원, 모모랜드, 강시원, 정대현, 얼라이크, 블랙핑크, 걸크러쉬, 오마이걸X유재환, 밴디트의 음반을 다룬다.
사월, 그리고 꽃
SM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1일

   

특유의 날카롭고 쨍한 톤을 다소 억눌러 부드럽고 둥글게 갈음한 보컬이 섬세하게 그림을 그리듯 퍼져 나간다. 6곡을 각각 다르게 그려내는 미묘한 톤이나 감정선의 변화도 꽤나 흥미로운 부분이며, 그것을 아주 탁월하게 수행하고 있어 큰 불편함 없이 들을 수 있다. 단지 타이틀곡에서 어딘가 묘한 답답함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데, '사랑의 말'과 '먼저 가 있을게'가 주를 이루는 앨범 후반부에서 그것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 특히 '사랑의 말'에서 구사하는 시그니처와도 같은 예리하게 찌르는 듯한 고음과 거칠게 뱉어내는 듯한 호흡이 어딘가 90년대의 정취를 풍기는 멜로디와 썩 잘 어우러진다. 담담하게 꾹꾹 누르다 이내 폭발하듯 터뜨려내는 '먼저 가 있을게' 역시 놓치지 말아야할 트랙. 프로덕션의 결과물이 아티스트의 능력치와 매력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끝끝내 지워지지 않는데, 이를 해결하는 것이 앞으로의 숙제가 될 것이다.

엑소에서 보여주던 날카로운 고음이나 OST에서의 청량감 대신 섬세함이라는 키워드를 내놓은 첸의 솔로 앨범. 건반과 스트링 위주의 단출한 악기 구성, 보컬이 곡의 전반을 이끌고 가는 모양새는 그의 테크닉과 감정전달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타이틀곡을 비롯한 트랙 전반부는 감정전달이 주였다면 테크닉과 목소리가 주는 힘은 후반부에서 더 느낄 수 있다. 개중에 매력적인 트랙을 꼽자면 '꽃'과 '먼저 가 있을게'. 전자는 농담을 달리하면서 여린 힘을 직관적으로 전달한다면 후자는 전조를 기점으로 들끓던 감정이 폭발하는데, 거기서 오는 고양감이 쾌감을 준다. 화려함을 내려놓으며 진정성을 내보이는 아이돌의 솔로 이미지와 엇비슷하지만 규현, 려욱 등 SM의 남성-솔로-발라더의 계보를 잇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점은 그가 테크닉에 치우쳐 임창정의 후예가 되지 않길 바라는 것과 섬세함을 표현하는 시각적 언어의 업데이트다. 뮤직비디오에서 베일로 얼굴을 덮은 피아니스트와 무용수의 복식은 노래를 보조하는 한편 여성의 존재를 지워내는, 다소 낡은 방식의 표현으로 보인다. 작년 MINO의 '아낙네'에서 들었던 불편과 일정 부분 맞닿아 있으니 이 부분에 대한 고찰도 노래를 향한 고찰만큼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아이즈원
HEART*IZ
Off The Record Entertainment, Stone Music Entertainment
2019년 4월 1일

   

‘비올레타’는 ⟨행복한 왕자⟩ 이야기를 가사에 차용하고 제비꽃을 상징하는 보라색을 컬러 테마로 하는 등 ‘라비앙로즈’의 연장선에 존재하면서도 자기복제처럼 보이지 않도록 콘셉트에 신경을 쓴 흔적이 두드러진다. ‘라비앙로즈’가 신선하면서도 강렬한 데뷔곡이었다면 ‘비올레타’는 브랜드로서 아이즈원이라는 그룹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곡. ‘해바라기’는 전작의 ‘아름다운 색’처럼 처음부터 첫 트랙에 자리하기 위해 쓰여진 듯한 노래로 히토미와 나코 등 일본 멤버의 다소 두드러지는 보컬을 반복되는 구절에 배치하면서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또한 멤버들의 중저음을 매력적으로 활용한 ‘Highlight’나 멤버 김민주와 히토미가 작사에 참여한 어쿠스틱한 발라드 ‘Really Like You’와 같은 곡으로 음악적 영역을 넓히기도 하는 동시에, 산뜻하고 신나는 분위기의 ‘하늘 위로’나 ‘Airplane’같은 곡들로 적절히 균형을 잡아준다. 일본 데뷔 싱글에 수록되었던 ‘고양이가 되고 싶어’와 ‘기분 좋은 안녕’의 번안 또한 멤버들이 맡아 팬서비스까지 극대화 하면서, 타이틀곡과 수록곡이 각각의 목적에 충실히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 더하거나 덜어낼 것이 없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훌륭히 피해간 앨범.

이번 회차의 추천작

이제껏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그룹들이 짜깁기식의 소모적인 기획이나 인기에 기댄 방만한 프로듀싱으로 퀄리티 컨트롤에 실패해온 것이 사실이다. "HEART*IZ"는 이 징크스를 완전히 불식시킨다. 타이틀곡 '비올레타'는 의도적으로 '라비앙로즈'의 구조를 차용해 일관성을 지키되, 절제미를 절도로, 곡선미를 직선미로 치환하며 색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혹자는 우려먹기가 아니냐 지적하지만, 사실 '비올레타'의 짜릿함은 '비올레타'가 '라비앙로즈'라는 원본의 착실한 변용물이라는 데서 나온다. '라비앙로즈' 없이 '비올레타'만이 발매되었다면, 혹은 '라비앙로즈'보다 '비올레타'가 먼저 발매되었다면 이 정도의 쾌감은 없었을 것이다. 수록곡 역시 적지 않은 볼륨에도 발랄한 기조가 기복없이 이어지며 부담없는 팝 앨범으로서의 덕목을 자랑한다. 시즌을 거듭하며 프로듀싱에도 발전이 있었음을 확인시켜주는 준수한 결과물. 추천 수록곡은 '하늘 위로'와 'Airplane'.



모모랜드
Banana Chacha
아이코닉스, 모그커뮤니케이션즈
2019년 4월 3일

   

바나나는 대체 케이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시마다 이런 모습으로 소환되는가. 아동 대상 콘텐츠라는 것은 알겠지만, 아동은 이정도 만듦새에도 만족하리라는 게으른 판단의 결과물로 보인다. 아니, 아동 대상임에도 의상의 활동성은 낮고 노출도는 필요 이상 높아 대상 시청 층에게 선뜻 권하기 꺼려진다. 번외 같은 곡임에도 그룹 커리어 선상에 그대로 넣었다는 점이 아쉽다.



강시원
Click Click
티앤케이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4일

   

⟨프로듀스 101⟩에 출연했던 연습생 강시원이 3년만에 드디어 솔로로 나섰다. SNS를 통해 꾸준히 팬을 모아와서 해외 케이팝 팬덤에서 반응이 꽤 좋다. 노래 한 곡을 여유있게 끌고 나가는 무대 매너가 훌륭하다. 새삼 여성 아이돌 연습생 풀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 되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뮤직비디오는 카드나 소리 등 근 2~3년간 다른 케이팝 뮤직비디오들이 많이 보여준 그림의 반복일 뿐이라 독창성은 부족하나, 신인의 에너지와 곡의 스타일에는 잘 어울린다.



정대현
Chapter2 “27”
위캔 컴퍼니
2019년 4월 5일

   

B.A.P의 메인보컬 대현이 솔로 가수 정대현으로 돌아왔다. 첫 미니 앨범이지만 데뷔 7년차다. 구성은 피아노가 주가 되는 발라드곡 일색으로, 아이돌 메인보컬 출신 가수들이 많이들 가는 길을 가기로 한 모양이다. 전곡을 본인이 작사, 작곡한 점이 눈에 띈다. 선량한 가사와 선율 곳곳에서 첫 발자국을 내딛는 조심스러움이 느껴진다. 본인이 말했듯이 이제 겨우 7년이다. 아직 보여줄 것이 많아 보인다.

놓치기 아까운 음반

그룹의 메인보컬이 발라드 중심의 자작곡으로 솔로 데뷔하는 것에 기대감이 좀 떨어질 때도 있지만, 정대현의 첫 미니앨범은 신선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기교를 많이 부리기보다 담백한 작곡인데, 그보다도 한층 더 담백하게 걷어낸 편성 속에서 보컬의 리버브가 기분 좋게 묻어나면서 간결하고 진중한 맛을 물씬 낸다. 가슴 벅차는 절정과 고음 등의 요소가 있음에도, 조였다가는 풀어주다 마는 식의 편곡의 절제가 세련미를 더한다. '너는 내게'나 인트로인 'Happy Dreams'와 같은 기조로 조금 더 멀리 끌고 나가는 모습도 한번 보고 싶어진다.



얼라이크
Real Love
87sound
2019년 4월 5일

  

데뷔곡 'Summer Love'에 이어 준수한 퀄리티로 돌아온 얼라이크. 뮤직비디오가 없는 점은 다소 아쉽지만 파워풀한 보컬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전과 같이 만족스럽다. 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보컬은 EDM의 구조를 따라 공간을 기분 좋게 채운다. 범작을 넘어설 과감한 선택을 내심 바라는데, 이들의 최선이 절대 부족하다기보다는 더욱 빛나길 바라서이다.



블랙핑크
KILL THIS LOVE
YG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5일

   

절 구간에 흐르는 서정적인 멜로디와 비장함을 강조하는 후렴의 빅 밴드 연출이 교차로 등장하는 흐름은 YG 고유의 문법에 가까웠다. 그러나 최근 걸그룹 제작의 동향이 청순계에서 카리스마를 어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다 보니, YG식 연출의 변용이 곳곳에서 등장하면서 단순한 캐릭터의 병치만으로는 뚜렷한 인상을 남기기 어렵게 되었다. 블랙핑크의 'Kill This Love'는 이 난제를 서사적인 비디오로 극복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YG에서 비주얼이란 아이코닉하지만 거창하지 않은 파편적인 이미지로 대중에게 빠르게 유통되어오곤 했다. 이 특성 때문에 케이팝 아이돌 안에서는 심심치않게 볼 수 있는 서사성을 YG에서 찾아보기란 무척 어려웠다. 그러나 'Kill This Love'에 등장하는 네 명의 주인공은 YG에서 처음으로 '이야기'를 시도한다. 네 명의 멤버는 모두 상반된 두 가지 캐릭터를 동시에 연기하는데, 이 두 캐릭터는 단순히 어떤 강렬함을 소구하기 위한 이미지 장치일 뿐만 아니라, 서사를 만들고 진행시키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과거에 의해 절망하는 자아와 그런 절망적인 과거에 잠식된 스스로를 죽이려고 하는 또 다른 자아는 그 자체로 단편적인 이미지 이상의 서사를 만든다. 결국 곡의 흐름에 따라 하이라이트 구간에 접어들면서는 마칭 밴드까지 등장하는데, YG에서 밀리터리 이미지가 '위엄'이나 '장대'가 아닌, 그 원속성에 가까운 '전투', '죽음'의 표현으로 등장하는 것 또한 'Kill This Love'가 처음이다.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블랙핑크는 유난히 불, 총, 전쟁 등 강력하면서도 극적인 테마를 타이틀곡의 퍼포먼스에 자주 접목했는데, 이것은 YG를 제외한 케이팝 보이그룹에게서 자주 발견되어온 테마이기도 해서 흥미롭다.



걸크러쉬
Memories (메모리즈)
담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8일

   

고혹적이고 주술적인 느낌을 만들어내려 한 것 같고 사운드 메이킹에서 그것은 어느 정도 달성된다. 섹션의 연결이나 편성의 일부 요소가 도식적이기는 하지만 소스 하나 하나가 나쁘지는 않다. 무엇보다, 트로피컬 하우스의 해일 끝에 칠 하우스를 선택한 것이 흥미롭다. 그러나 선택이 특별한만큼 결과도 특별하지는 못해 다소 지루하게 흘러가는데, 뮤직비디오의 과감하고 집요한 섹스 어필이 음악에 잡아먹힐까 안배한 것처럼 들릴 정도. 와중에 7도 도약을 무작정 반복하는 등의 멜로디가 품위를 더 낮춘다.



오마이걸X유재환
사랑 속도
WM 엔터테인먼트, UL 스튜디오
2019년 4월 8일

  

산뜻하지만 그것에 그치지 않는 곡. 다만 본격적인 매력을 느끼게 되는 건 후렴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 뒤다. 나이브한 멜로디가 곡의 정서와 편곡에 잘 어울리기는 하나 6/8 박자에 휘둘리기라도 하듯 적은 기복으로 꽉 차 있어서 정작 보컬이 정서적 깊이를 더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오마이걸은 결이 곱고 속 깊은 캐릭터를 잘 구현해 온 팀이기 때문에 그런 점이 더욱 아쉽다. 후렴 뒤의 훅에서 VIm9를 그리며 길게 호흡을 내려놓거나 내레이션과 래핑과 싱잉의 사이에 걸치는 등 미묘한 지점들을 그어가는 대목이 깊은 인상을 남기는 이유다.



BVNDIT(밴디트)
BVNDIT, BE AMBITIOUS!
MNH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10일

   
놓치기 아까운 음반

아이돌 시장이 과포화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새로운 지점을 찾아 이를 교묘히 파고드는 그룹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밴디트가 바로 그 예시다. 인트로 'Be Ambitious!'는 마칭 밴드 사운드를 사용하고 있는데, 역동적이기보다 되레 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위풍당당한 행진의 기세보다 경건한 거수경례 의식의 결의가 읽힌달까. 내밀한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야심은 근 몇년간 성행한 당찬 소녀상과도, 과시적 당당함을 내세우는 '걸크러시'와도 궤를 달리 한다. 타이틀곡 'Hocus Pocus'는 톤다운된 뭄바톤 사운드를 바탕으로 탄탄한 지구력과 내구성을 뽐내며 그룹 이미지를 더욱 견고하게 연성한다. 얼마전 압도적인 공격력을 내세워 데뷔한 에버글로우와는 대척점에 놓이는 전술이라 더욱 흥미롭기도. 청하를 성공시킨 MNH의 역량에 더욱 신뢰를 품게 된다.

'Hocus Pocus'는 파워를 고르게 나누다 보니 텐션은 떨어지지 않는 대신 자극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무대에서 안무가 입혀졌을 때야 파워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들의 컬러가 정중동에 기인해 흥미로움을 준다. 그들의 심심한 매력은 힘을 줘야 할 타이틀곡에는 약간의 물음표를 남기지만 미묘한 감정선을 가진 수록곡 '연애의 온도'에서는 빛을 발한다. '나의 매력에 빠지게 될 거야'보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상대의 반응에 흔들리는 나'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뭘까. 누군가의 동생 그룹이라는 애칭은 대중성은 쉽게 확보하는 한편 그렇게 붙들어 놓은 눈에 확신을 심어줘야 하는, 다소 까다로운 이름표다. 이번의 확신은 조금 뒤에 켜졌으니 다음은 들어가기 전부터 깜빡이가 켜지길 바란다.



1st Listen 시리즈

열흘 동안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필진들의 단평

  1. 1st Listen : 2019년 2월 초순
  2. 1st Listen : 2019년 2월 중순
  3. 1st Listen : 2019년 2월 하순
  4. 1st Listen : 2019년 3월 초순
  5. 1st Listen : 2019년 3월 중순
  6. 1st Listen : 2019년 3월 하순
  7. 1st Listen : 2019년 4월 초순

시리즈 전체 보기 ≫

1st Listen : 2019년 4월 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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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임현식, 김규종&단디, (여자)아이들, 맵식스, 방탄소년단, 원더나인, 청하, 슈퍼주니어-D&E, 미드나잇, 성리, 해시태그, 스테파니, 홀리데이, 영재의 음반을 다룬다.
임현식
온더캠퍼스 OST Part 4
BPM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11일

   

팀 내 메인보컬을 맡고 있는 비투비의 임현식. 솔로곡 ‘Swimming’에서도 이미 두각을 드러냈듯 보컬뿐만 아니라 작사, 작곡, 편곡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이 곡 또한 작사, 작곡, 편곡을 했을 뿐만 아니라 베이스와 피아노를 직접 연주했다. 시작은 피아노 반주와 목소리만으로 잔잔하게 흘러가다 2절부터 베이스, 드럼, 기타가 만나 감성이 풍부해진다. 온전히 그의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하듯 노래하는데 특유의 부드러운 보컬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다들 이야기하는 사랑을, 그저 사랑한다고 말해달라는 직관적인 가사마저 그의 목소리로 들으니 뻔하지 않게 들리는 것은 그가 가진 목소리의 힘 아닐까.



김규종, 단디
Just Love Song
SD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11일

   

김규종의 보컬과 단디의 랩이 반반으로 편안하게 균형을 이룬다. 김규종의 이름으로 발매된 곡들을 되돌아보면 늘 균일한 톤과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었다. SS501 때는 비교적 조용한 서브보컬이었던 그가 솔로가 된 지금은 가장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하고 있음에 눈길이 간다. 그룹으로 누렸던 커리어하이가 지났음에도 김규종의 음악성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여자)아이들
그녀의 사생활 OST Part 1
스톤뮤직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11일

   

(여자)아이들의 첫 번째 드라마 OST다. 메인댄서인 수진의 보컬이 잘 느껴지는데, 가성으로 고음을 처리하는 부분이 매력적인 목소리와 잘 어우러진다. 지금까지의 (여자)아이들의 타이틀곡이었던 ‘Latata’-‘한(一)’-‘Senorita’로 줄곧 카리스마 있는 모습만 봐왔는데, 멤버 각자의 음색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와 더불어 따뜻하고 섬세한 반전 매력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맵식스
Follow me
올에스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12일

  

일본 활동이 길어지고 있는 맵식스의 오랜만의 국내작이다. 2017년부터 함께 작업한 미친감성, KZ 등과 다시 뭉쳤다. (그동안 프로듀서 미친감성은 유튜브에서 모 음악 유튜버의 비리를 고발하며 개인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적 페이소스가 특징인 멜로디에 퓨처베이스 사운드를 입힌 곡으로, 칠링한 사운드가 유행하기 직전이었던 2010년대 초반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방탄소년단
Map Of The Soul: Persona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12일

   

“Love Yourself”까지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너와 나의 사랑’, ‘팬들을 향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방탄소년단의 가사는 돌려 말하지 않고 솔직 담백하다. 그것이 감성을 자극하고 공감하게 된다. 특히 리더 RM의 솔로곡인 ‘Intro : Persona’는 씹어 먹을 듯 랩을 하지만 “넌 절대로 너의 온도를 잃지 마”라며 “나는 누구인가”하는 보편적 고민과 혼란스러웠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맨 마지막에 수록된 ‘Dionysus’는 엄청난 하이 텐션으로 콘서트에서 방방 뛰어가며 놀고 싶을 정도로 신이 나는데, 앨범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수록된 곡과 순서를 보았을 때 약간 뜬금없다고 느껴졌다. 추천곡은 ‘소우주’. 독특한 음색을 가진 뷔의 담담한 보컬이 왠지 모를 뭉클함을 끌어올리고, 일정하게 계속 깔리는 비트 덕에 정말 우주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해준다. 다양한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우린 “우리대로 빛나”, “우린 그 자체로 빛나”라는 감성적인 가사가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을 토닥거린다.

이번 회차의 추천작

‘작은 것들을 위한 시’로 대표되는 달콤하고 편안한 팝 기조의 곡들이 두드러진다. 팬 서비스 성격도 있다지만 세계 시장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만한 정통파 팝송을 트렌디한 색채로 담아냈다. 할시나 에드 시런 등의 이름이 화려하지만 정작 이들의 색채가 딱히 음반에서 두드러지지는 않는데, 사실 ‘BTS goes pop’에 이들이 특별히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고도 하겠다. 방탄소년단 자체가 갖는 음악적 유연성과 소화력의 방증이기도. “Map of the Soul” 연작의 향방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밝고 가벼운 색채로 시작해 향후 고민하게 될 무거운 주제들에 대한 티저처럼 ‘Dionysus’를 내비쳤다고 보는 해석도 가능하겠다. 확고한 테마를 중심으로 캐치하게 흐르는 다른 곡들에 비해 ‘완연한 케이팝’으로 엎치락뒤치락하는 이 곡은 그만큼 흥미로운 자리를 점한다. 메시지는 무겁지만 낙천적이고 쾌활한 ‘Intro: Persona’로 시작해 달콤하게 흐른 뒤 다시 무겁고 난폭하게 마무리하는 음반으로서의 흐름을 결정짓는 곡이기도 하고, 여느 때보다 한껏 팝적인 이 음반에 상징과 서사를 강하게 드리우는 곡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원더나인
XIX
포켓돌 스튜디오
2019년 4월 13일

   

‘(상대적으로) 큰 이슈를 몰지 못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데뷔팀 앨범은 대개 퀄리티가 높다’는 가설을 세워도 될 정도라고 하면 좀 잔인할까. 원더나인은 더블 타이틀을 들어 두 개의 축을 제시한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하이틴 장르로 채운 드라마타이즈 버전 뮤직비디오에서 볼 수 있듯이 신인만의 풋풋한 매력이 돋보이고 ‘Spotlight’는 라틴 요소가 깃든 중독적인 훅과 다인원을 활용한 안무로 파워풀한 이미지를 남긴다. 풋풋함과 파워라는 두 요소가 균형을 적절히 이루는 클래식한 데뷔 음반이라고 할 수 있겠다. 17개월이라는 짧다면 짧은 프로젝트 동안 한 차례 깊은 인상을 주길 바란다. 앞서 언급했던 가설을 넘어 개인의 매력을 대중에 각인하기에 충분한 시간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청하
[Vol.13] 유희열의 스케치북 10주년 프로젝트
한국방송공사
2019년 4월 13일

  

김건모가 부른 원곡은 이별의 슬픔을 절절하게 노래했다면 청하는 이를 담담히 받아들인 채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는 듯한 느낌이다. 편곡이 왠지 밝은 느낌이어서 낯선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청하의 목소리와는 잘 어울린다. 청하표 발라드는 항상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슈퍼주니어-D&E
Danger
SM 엔터테인먼트, 레이블 SJ
2019년 4월 14일

   

‘땡겨’의 뮤직비디오가 입증하는 것 중 하나는 D&E가 소화할 수 있는 스펙트럼의 넓이다. 갱스터와 도박, 페이셜 타투 등이 꽤나 무거운 이미지들을 던져대고 있지만 딱히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지난 세기의 홍콩 느와르를 끌어온 케이팝 뮤직비디오가 정말 많지만 도박의 이미지를 이만큼 많이 보여주는 작품은 그리 흔치 않다.) 전력이 있어서일지, ‘콘셉트’를 내세우며 나름 즐겁게 살아가는 D&E가 보일 따름이다. 트랩 비트와 결합한 일렉트로 사운드 자체가 환기하는 시대감이 다소 오래됐고 관습적인 멜로디를 포함하고 있는 등 혁신적인 작품이라 하기 힘들지만, 그것도 큰 흠이 되지는 않는다. 왜냐면, D&E가 즐겁게 살고 있으니까. 그것은 의외로 달성하기 어려운 경지다. 다만 이왕 그렇게, 웬만한 걸 할 수 있는 여유범위가 있다면 조금 더 과감한 것을 보고 싶다는 마음도 든다.



미드나잇
미드나잇 Project single Album Vol.2
H&I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14일

   
놓치기 아까운 음반

예산 규모가 크지도, 기획이 과히 섬세하지도 않지만 힙합을 차용해 메타-아이돌의 서사를 들고 나온 점이 아주 독특하다. 특히 ‘파트 2’는 ‘파트 1’에서의 글리치팝의 장르적 발랄함을 다 걷어내고 불량하고 신경질적인 어반 갱스터 느낌으로 재편했는데, 이것이 멤버들에게 훨씬 더 잘 어울린다. ‘걸그룹들 하는 양을 보다가 내가 직접 나왔다’는 선언을 아이돌로서 풀어내는 것, 충분히 스왜그로 소화할 수 있을 만한 메시지다.



성리
첫, 사랑
C2k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15일

   
놓치기 아까운 음반

발라드와 R&B로 채운 미니앨범인데 꽤 특색 있다. (비트의 질감이 조금만 더 세련되면 정말 좋겠지만.) 피아노의 무게감을 중심으로 서정이랑 액체에 몸을 푹 담갔다가는, 슬쩍 건져내기만 하듯이 여운을 남기며 각곡이 마무리된다. ‘Glimmer’가 꽤 감정을 격하게 가져가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로맨틱한 가벼움을 잃지 않는 건 성리의 보컬 때문이다. 애절함이 있는 음색이지만 과장하기보다는 조금은 힘을 뺀 듯이 노래하면서 곳곳에서 감정선을 섬세하게 조절하는 것이 주효하다. 전통적인 발라드 가수와 드라마 OST로 수렴하는 ‘적당한 발라드’의 세계와 선을 그으며 독특한 영역을 차지할 가능성을 엿본다.



해시태그
#Aeji #paSsion
LUK Factory
2019년 4월 16일

   

아이돌은 6개월 이상 공백기를 가지면 길다고 느껴지는데 해시태그는 왜인지 ‘해시태그의 유닛’이라고 언급하지 않았던 유닛 활동을 제외하면 1년 반 만에 컴백을 했다. 신인에게 주어진 방송 기회는 음악 방송뿐이라 컴백을 빨리 하여 무대를 보여주어야 이름을 알릴 수 있는데 아쉽다. 신나는 곡이었던 전작과 달리 걸크러시로 노선을 바꿨다. 그런데 음반 소개에서 말하는 ‘성장한 여성의 느낌’, ‘성숙해진 멤버들이 가진 여성적 매력이 표출’을 보여줄 길이 바닥에 엎드려 허리를 튕기면서 섹시한 척하는 안무밖에 없었던 걸까? 발라드 곡 ‘안녕 이밤’도 멤버들의 보컬이 불안하게 느껴진다. 싱글을 내는 한이 있더라도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스테파니
Man On The Dance Floor
WK 미디어
2019년 4월 18일

   

‘선수 입장’. 그야말로 자기의 색깔과 방향을 잘 이해하고 있는 스테파니에게 어울리는 가사다. 뮤지컬의 넘버처럼 무대를 넓게 쓴 안무와 함께 무대 위 긴장, 그리고 유혹의 순간을 레트로 무드로 매만진 ‘Dance Ver.’, 그리고 그의 목소리에 일렁이는 소울풀한 바이브를 재지하게 담은 ‘Piano Ver.’. 이렇게 두 가지의 편곡이 스테파니의 강점과 매력을 두루 살린다.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의 ‘Dancer In The Rain’에서의 댄서 이미지를 다시금 볼 수 있어서 반갑다. 역시 선수는 다르다는 말 밖에.



홀리데이
판타지
브릭웍스 컴퍼니
2019년 4월 19일

   
놓치기 아까운 음반

5인조 신인 그룹 홀리데이의 데뷔곡. 케이팝 씬에는 이미 나올 만큼 나온 트로피컬 하우스인데도 어두운 코드 진행에 귀여운 스틸팬이나 차임벨 같은 소스를 가미해 세련되게 편곡한 탓에 어설프지 않게 들린다. 특이한 점은 유튜브 채널이나 뮤직비디오가 전혀 없다는 것. 어설프게 만들 바엔 아예 안 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대신 음악 방송 무대를 정성껏 꾸몄다. 안무도 준수하고 ‘헤메스’(헤어 메이크업 스타일링의 줄임말)도 꼼꼼하게 챙겼다. 갈수록 소비자의 눈은 높아지고 신인 런칭의 비용도 올라가고 있는 요즘 같은 때에, 아예 초기 기획 단계부터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한 듯 보인다.

또 하나의 걸그룹이 데뷔했다. 회사도 신생이고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그룹 같은데 그래서인지 데뷔 싱글임에도 불구하고 뮤직비디오가 없다. 하지만 무대 의상도 곡의 분위기를 살려주기에 충분하고, 무엇보다 멤버들 실력이 모두 골고루 좋은 듯하다. 안무가 꽤 어려운데 라이브를 능숙하게 소화한다. 눈에 띄는 멤버는 새벽과 청음인데, 곡을 잘 이해하고 무대에서 표출한다. 왠지 데뷔 맛보기 싱글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다음에서 홀리데이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하는 음반을 기대해본다.



영재
Fancy
J 월드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19일

   

B.A.P 영재의 솔로 미니앨범. ‘Another Night’과 ‘Gravity’를 더블타이틀로 하고 있는데 두 곡 모두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다. 각각 신스와 브라스로 청량미가 넘실대고, 팝적인 감각과 좋은 취향의 편성이 촘촘한 그루브로 흥을 한껏 끌어올린다. 응어리 있는 듯한 영재의 보컬도 매우 효과적으로 곡을 관통하며 귓가에 뚫고 들어온다. 컴팩트하지만 확고한 네 곡이 담긴 고무적인 EP. 그러나 금발 백인 여성에게 집요하게 따라붙는 ‘Another Night’의 뮤직비디오는 좋게 보아도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데, 주인공이 껄렁한 남자냐 화사하고 상큼한 남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B.A.P에서도 이런 것은 이미 다 뛰어넘었다고 생각했는데.



1st Listen 시리즈

열흘 동안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필진들의 단평

  1. 1st Listen : 2019년 2월 중순
  2. 1st Listen : 2019년 2월 하순
  3. 1st Listen : 2019년 3월 초순
  4. 1st Listen : 2019년 3월 중순
  5. 1st Listen : 2019년 3월 하순
  6. 1st Listen : 2019년 4월 초순
  7. 1st Listen : 2019년 4월 중순

시리즈 전체 보기 ≫

우주소녀 –‘La La Love’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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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발매되는 음반은 아무래도 연말 시상식이 지나간 직후에 나오는 터라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에서는 벗어나있기 십상이다. 올해 1월에 발매된 우주소녀의 ‘La La Love’도 다소 그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냥 떠내려보내기에는 곱씹어 들을만한 곡이라, 짧게나마 리뷰를 남긴다.

우주소녀의 ‘La La Love’는 사진으로 순간을 붙잡고자 하는 열망을 노래한 곡이다. 촬영이라는 행위가 갖는 낭만성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스타쉽에서 내놓은 보도자료는 이 곡을 ‘레트로팝’이라 지칭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라는 키워드가 워낙 20세기 중후반을 대중없이 지칭하고 있어서 정확히 언제쯤을 말하는지 난감하긴 하지만, 음악의 스타일에서 추측하기로는 슈퍼모델이 미디어의 핀조명을 받던 8-90년대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전주부터 ‘포 온 더 플로어’로 쿵 쿵 울려대는 하우스킥, 스타카토로 연주되는 싱코페이션 스트링 신스, 이 모두를 감싼 리버브의 과장된 공간감 등은 당대 화보 촬영장이나 런웨이를 장식한 음악들을 연상시킨다. 하우스, 라운지, 캣워크, 눈부신 조명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사진 촬영이라는 가사의 주제를 이렇게 표현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 곡이 런웨이용 라운지 하우스처럼만 들리지 않는 이유는 코드의 진행 방식과 멜로디에 있다. 도회적인 느낌, 혹은 간단명료한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되도록 단호한 트라이어드 코드나 파워 코드만 쓰던 당시 하우스(혹은 유로댄스)에 비해, 이 곡은 마디마다 재즈적인 화성으로 수를 놓았다. 전주부터 7과 dim을 오고가는 화려한 하모니로 듣는 이를 압도하고, 버스(verse)도 단순 다이아토닉(Diatonic)이 아니라 다른 음계에서 빌려온 세련된 코드들로 한껏 장식했다. 같은 하우스여도 모던한 느낌보다는 샹들리에 아래서 펼쳐지는 무도회의 느낌을 낸다.

우주소녀가 최근작 ‘부탁해’나 ‘꿈꾸는 마음으로’ 등에서 선보인 콘셉트에는 분명 ‘아니메’나 환상문학 등에서 볼 수 있는 서브컬처의 뉘앙스가 있다. 그러나 여자친구 같은 그룹이 2000년대~현재의 아니메 수요층(일명 ‘투니버스 세대’)의 귀를 겨냥한다면, 우주소녀의 세계는 그보다 조금 전 시대인 80~90년대에 더 가깝다. ‘우주소녀’라는 작명도 그렇다. ‘우주’라는 키워드에서는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우주의 낭만만을 기믹으로 차용한 90년대 아니메 〈달의 요정 세일러문〉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스트링을 적극 기용하는 수록곡들에서도 그 시대 마법소녀물 사운드트랙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레퍼런스 삼을 소스가 풍성했던 시대에서 영감을 받았을 거라 짐작되는 우주소녀의 사운드는, 레트로가 곧 세련이 되는 뒤죽박죽 2010년대의 끝물에 이렇게나 멋지게 어울린다.

펀치라인이라 할 만한 B파트 도입부를 살펴보겠다. 설아와 여름이 앞뒤로 교차하며 다음의 가사를 불러낸다.

“아무 준비 없이 널 좋아해도 될까
나 그래도 될까 어렵게 생각 말까”

설아는 음색이 청명하며 울림이 좋은 보컬이고, 여름은 음색에서 말괄량이 같은 느낌이 나는 허스키한 톤의 래퍼/보컬이다. 이 둘의 톤이 서로 대비되며 다이내믹을 발생시킨다. 마치 속마음을 읊조리는 두 가지 다른 방식처럼 들리는 대조가 노래의 뉘앙스를 풍부하게 만든다.

우주소녀는 현재 활동하는 여성 아이돌 그룹 중 최다 인원을 자랑하는 팀이고, 멤버 수가 많은만큼 다양한 톤의 목소리들이 존재한다. 이들을 어떤 시퀀스로 배열하느냐에 따라 노래 안에서 구성해낼 수 있는 표현의 흐름이 다양해진다. ‘누가 이번 곡에서 몇 초를 불렀다’는 파이 차트보다 이런 표현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음악을 보다 풍성하게 들을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우주소녀의 전작 중 ‘비밀이야’의 정석적인 가요 전개(마지막 후렴의 고음 애드리브까지 완벽하다)와 비교한다면, 이 곡의 후렴은 그런 드라마틱함이 덜하다. 버스를 거치며 지연되고 지연된 느낌이 후렴 전반 “너무 아름다운 너 Stay ~”에서도 마땅히 해소되지 않는다. “Love 이 순간을 가둘래 ~”의 랩 부분에서 텐션을 충분히 떨어뜨렸기 때문에 ‘이 다음엔 터지겠구나’하며 기대하게 되는데, 이내 오는 여덟 마디 동안 코드 진행이 또 상승하며 숨에 숨이 찰 때까지 해소가 재차 지연된다. 그리고 맞이하는 “La la la la la love / La la la la so stay”는, 이전 마디의 “이 순간 영원할 La la love”에서 자연스럽게 넘어와 물흐르듯 지나가버린다. 극적인 느낌은 적으나, 점진적인 해결 덕에 세련되게 들리기도 한다.

작곡팀 풀블룸(Full8loom)이 우주소녀에게 제공한 최근의 노래들을 돌아보면 대체로 이렇다. 마법소녀 OST 같은 악기 사용과 멜로우한 멜로디로 포장한 구성을 잘 뜯어보면 흔한 가요 작법에서 아주 조금씩 비껴난 의외성이 보이고, 그래서 독특하게 들린다. ‘꿈꾸는 마음으로’는 한 절이 끝나기도 전에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다시 마이너로, 마이너의 또다른 조로 몇 번이나 전조하기도 하고, ‘부탁해’는 버스를 한 줄씩 부를 때마다 종결하는 듯한 코드를 부여해서 (E마이너인 곡을 라인마다 토닉인 E 혹은 Em로 끝냈다) 조각조각 나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이런 음악적 실험성도 우주소녀를 남다르게 만드는 점 중 하나다.

노랫말은 사진의 촬영, 순간의 박제에 집중하고 있다. 프레임 속의 피사체가 되는 아이돌이 직접 부르는 이런 가사는 차라리 아이돌을 촬영하는 ‘찍덕’팬의 시선에 더 가깝다. 망설이다 이끌린 운명 같은 사랑, 그것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카메라를 드는 마음 말이다. 여기에는 지나가버리는 시간을 붙잡고자 하는 인간의 무력한 본능이 엿보인다. 화려하고 눈부신 극치를 그린 노래이지만, 안타까움이 절로 실리는 건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아니, 지금 찬란하기 때문에 그 지나감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일 테고, 그런 감상이 아이돌이 전하는 아름다움의 무상함을 생각해보게 하기도 한다.

우주소녀
WJ STAY?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2019년 1월 8일

   


1st Listen : 2019년 4월 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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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손동운, 트와이스, 방용국, 베리베리, 엔플라잉, 김희철, 윤지성, 뉴키드, C.A.P, 배진영, 뉴이스트, 지구(GeeGu), 더보이즈, 여고생, 정은지의 음반을 다룬다.
손동운
Act 1: The Orchestra
어라운드 어스
2019년 4월 22일

   

보컬리스트로서 손동운의 강점 중 하나는 마치 일단 믿어봐도 되는 선량한 청년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유재환을 파트너 삼아 크게 과장하지 않으며 서정적인 결을 잘 가다듬은 이 미니앨범에서 그는 그래서 더 진솔하게 들린다. 어쿠스틱 악기들이 질감도 잘 살아있고 효과적으로 사용됐다. 드라마 OST 풍의 질감이기도 한데, 에디 히긴스를 듣는 감성을 충족할 법도 한 몇몇 순간이 특히 드라마를 위해 작곡된 OST보다는 드라마 속에서 흐르는 음악처럼 들리며 꽤 연극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래서 음색이 그려내는 인물상이 보다 생생하게 살아난다. 가사는 대체로 익숙한 케이팝 발라드의 범주 내에 머무는 편인데 일단 이 미니앨범의 담백함에는 잘 어울린다. 놓치기 아까운 수록곡은 꼭 적당하게 파문을 일으키며 곱게 흐르는 멜로디가 근사한 호흡을 이끌어내는 ‘Decrescendo’.



트와이스
Fancy You
JYP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22일

   

‘Girls Like Us’나 ‘Hot’을 비롯한 몇 수록곡은 시대감마저 조금씩 이질적인 데가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라면 과거의 수록곡들이 매우 특정한 ‘트와이스 월드’의 맥락 속에 머물며 조금씩 변주를 보이던 것에서 동시대 댄스팝으로 큼직한 걸음을 떼었다는 데 있다. 오히려 케이팝에서 멀어지는 듯한 느낌마저 있는데, 단지 레퍼런스를 달리했다기보다 트와이스의 음색 팔레트를 활용하는 다른 맥락을 찾아낸 듯한 인상이다. 파워 보컬과 고음도 곡을 열심히 끌고 나가기보다는 적재적소에서 터지고, 사근사근하거나 달콤한 음색, 말하는 듯한 창법 등 트와이스의 ‘귀여움’을 주로 담당하던 요소들도 자신감 있게 제자리를 차지한다. ‘Fancy’ 역시 이런 양상이 잘 느껴지는 트랙으로, 기세 좋게 넘실대며 촘촘하게 찔러대는 리듬 위에서 멤버들이 활개치고 다니는 모습이 선연하다. ‘그래, 돌이켜보면 트와이스의 히트곡들은 늘 화려하고 기운 찼지’하는 상념도 든다. ‘예쁜 트와이스’에서 ‘신나는 트와이스’로 넘어가는 한 순간이자, 그 과정으로서 매우 흥미로운 한 순간이다. 고전 케이팝을 묘하게 연상시키며 비트는 ‘Turn It Up’이나, 기존 트와이스 수록곡들의 다정한 순간들을 변모시킨 ‘Strawberry’도 귀기울여 들어봄직하다.

이번 회차의 추천작

‘Likey’부터 ‘Yes Or Yes’까지 이르는 오랜 준비운동 끝에 ‘Fancy’는 본격적인 전진의 신호탄을 쏘아올린다. “여자가 쉽게 맘을 주면 안 돼”라며(‘Cheer Up’) “눈치를 주”기만 하던(‘Signal’) 트와이스가 “좀만 더 용기를 내 더는 망설이지 마”(‘Heartshaker’)라는 다짐을 거쳐 “내가 먼저 좋아하면 어때”라고 외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가. 물론 이러한 진일보의 역사 역시 ‘소녀에서 숙녀로’라는 수사로 대표되는, 남성의 시선과 기호에 맞추어 재단된 선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애초에 ‘Knock Knock’을 제외한 모든 한국 타이틀곡의 작사가는 줄곧 남성이다.) 그러나 CLC의 ‘No’가 가사와 불화하는 스타일링으로 비판받았음에도 ‘예뻐지게’와 ‘아니야’와 같은 넘버를 부르던 시절을 지나 방향성 확립에 난항을 겪어온 그룹 서사 위에서 폭발적인 기의를 획득했듯, ‘Fancy’ 역시 마찬가지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퍼포먼스를 확인한다면 이들의 변화를 더욱 긍정하게 된다. ‘우아하게’의 댄스브레이크에서 보여준 에너지를 3분 내내 쏟아내는 듯한 안무부터 멤버들의 제안으로 완성된 수트 스타일링까지. 멤버들의 출중한 기량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에 가둬두었던 지난날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앞으로 더욱 많은 도전과 성취를 이어나갈 트와이스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뒤이은 일본 활동곡 ‘Breakthrough’에서 이들의 진전을 곧바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미심쩍은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꼭 수록곡까지 일청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한층 더 시원시원한 기세를 맛보고 싶다면 ‘Stuck In My Head’를, 'Fancy'의 내러티브가 못내 아쉬웠다면 Charlie XCX가 작곡에 참여하고 지효가 단독작사한 ‘Girls Like Us’을 놓치지 마시길.



방용국
Coming Home
Bang Yongguk
2019년 4월 22일

   
놓치기 아까운 음반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기획 방송의 OST다. 설정에서 연상되는 전형을 방용국이 했다면 조금 버거웠을지도 모르겠지만 근사한 반전이다. 자유와 해방의 미래지향적 메시지는 그의 평소 주제와도 충분히 맞닿아 있어서 그냥 하던 걸 가져와서 할 뿐이란 느낌도 든다. 다만 이를 매우 낙관적이고 싱그러운 곡으로 담아냈다. 방용국의 음색도 껄렁한 맛이 잘 살아나면서 그것이 특히나 기분 좋게 느껴져서, 곡의 속도감이 간혹 너무 서둘러 넘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 때조차 얽매이는 것 없는 홀가분한 무드의 표현처럼 다가온다.



베리베리
Veri-Able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24일

   
놓치기 아까운 음반

전작에 이어 일관적으로 올드스쿨 장르를 내세우고 있다. 한껏 업템포로 흥청거렸던 전 타이틀곡 ‘불러줘’와 본 타이틀곡 ‘딱 잘라서 말해’의 차이점이라면, 묵직하게 출렁이는 베이스로 중심을 잡아 깊이감을 더한 사운드 위에 조금은 안절부절 못하는 소년의 말간 얼굴을 덧씌웠다는 점. 프롬 파티의 ‘블루스 타임’에 흐를 법한 발라드곡 ‘나 집에 가지 않을래’마저도 90년대 영미권 보이밴드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점이 인상적. 서브 타이틀곡이기도 한 ‘밝혀줘’가 가장 이질적으로 트로피컬 하우스를 표방하고 있는데, 올드스쿨과 컨템포러리라는 양극단(?)의 장르가 한 미니앨범 안에 공존하고 있음에도 일관성과 유기성이 느껴지는 점이 꽤나 만족스럽다.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떠한 본능적인 ‘쾌감’과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깔끔하게 잘 떨어지는 퍼포먼스 역시 변함없이 탁월하다. 다시 말하건대, 이 그룹은 올해의 신인으로 주목받아 마땅하다. 점점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슈퍼루키.

놓치기 아까운 음반

데뷔 타이틀곡 ‘불러줘’와 동일 작곡진이 만든 ‘딱 잘라서 말해’는 “당대 뉴잭스윙 특유의 활기를 21세기 케이팝의 형태로 내놓으며 ‘아이돌미’를 강조”하는 책략을 유지하되 전보다 탄산의 함량을 확 높여 청량감을 증폭시킨다. ‘불러줘’가 해사한 청초함이었다면 ‘딱 잘라서 말해’는 박력있는 청량함. 회를 거듭할수록 다양한 멤버에 눈길이 가는 것 역시 긍정적인 부분. ‘불러줘’에서 강민이 그룹 이미지의 핵으로 주목받았다면, ‘딱 잘라서 말해’에서는 땡땡한 보컬로 그룹 사운드를 이끄는 메인보컬 연호가 눈에 띈다. 수록곡의 면면 역시 훌륭하다. 90년대 청춘물을 떠올리게 하는 ‘집에 가지 않을래’와 레트로 장르가 아닌 트로피컬 하우스를 꺼내들며 베리베리의 변주를 넘보게 되는 ‘밝혀줘’를 특히 추천. 작곡, 작사를 포함 작업 전반에 걸쳐 멤버들의 높은 기여도가 나타나는데, 이전보다도 균일한 퀄리티 컨트롤을 보여주고 있어 ‘DIY돌’이라는 다소 거창한 명목을 이제야 시인하게 된다. 데뷔 4개월 차 단 두 장의 EP만으로 기틀을 확고히 다져 이 그룹의 장래에 기대를 넘어 믿음을 품어도 좋을 듯하다. 그룹을 향한 애정과 지지를 담아 데뷔 미니앨범에 이어 다시금 Discovery를 부여한다.



엔플라잉
봄이 부시게
FNC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24일

   
놓치기 아까운 음반

FT아일랜드와 씨앤블루가 아이돌팝의 바운더리 내에서 각각 통상적인 가요와 팝을 댄스튠이 아닌 밴드 형태로 선보이는, ‘밴드하는 아이돌’로서 의의를 가졌다면, 엔플라잉은 역으로 여느 밴드들이 ‘유치하다’거나 ‘낯간지럽다’는 이유로, 혹은 ‘진정성’을 운운하며 기피할 ‘아이돌미’ 가득한 음악을 밴드 형태로 천연덕스럽게 소화해내는, ‘아이돌스러운 밴드’로 그룹을 꾸려나가는 듯하다. 굳이 세션 편성에 연연하지 않는 듯 다양한 스타일과 장르를 오가는 것 역시 아이돌팝의 문법에서 빌려온 차별점. 돌이켜보면 밴드에서나 아이돌에서나 이만큼 스쿨밴드의 펄떡이는 활력을 구현해내는 그룹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그러나 이를 구현하는 가운데 결코 미숙함은 없어 밴드 음악 팬과 아이돌팝 팬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 듯하다. 생각 이상으로 엔플라잉은 꽤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을지도. 라이브로 듣고 싶은 곡은 유회승의 시원시원한 보컬이 돋보이는 ‘놔’와 다채로운 구성이 돋보이는 ‘Preview’.

놓치기 아까운 음반

“Fly High” 프로젝트의 중간 결산격 앨범이다. 시집이라는 앨범 콘셉트를 충실히 이행하는 타이틀 ‘봄이 부시게’, 최소한의 악기로 최대한 달리는 ‘놔’, ‘힙합 섞어 Rock’이라는 이 밴드의 정체성과 본질을 유지하는 ‘불놀이’, 가벼운 재즈 사운드를 띄는 ‘Preview’까지 각각 개성 강한 트랙들이 엔플라잉의 영역을 넓힌다. 다양한 가능성과 음악을 전한다는 프로젝트의 취지가 드디어 빛을 발한다. 좋은 성적을 목표로 하기보다 ‘옥탑방’이 우연히 잘 만든 곡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듯하다. 멤버들의 충분한 실력과 프로듀서로서 반짝이는 이승협의 재능이 만나 이루는 시너지가 앞으로의 활동을 더 기대하게 한다.



김희철
옛날 사람 (Old Movie)
SM 엔터테인먼트, Label SJ
2019년 4월 24일

   

유구한 ‘후회공’ 감성의 남성향 노래방 애창곡 스타일로 가창자가 아이돌(출신)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아이돌팝의 내음을 전혀 감지할 수 없을 정도. 슈퍼주니어 그룹으로 묶이지 않는 이상 그의 작업을 아이돌로지에서 다루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맞다. 제목 말마따나 그는 참 옛날사람이다. 사실 본인도 그를 정확히 인지하고 발매한 곡같아 그의 절창이 통째로 사카즘처럼 느껴지기도.



윤지성
Dear diary
LM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25일

   

어쿠스틱 기타 위주의 오가닉한 사운드로 꾸려진 달콤한 R&B나 피아노가 가세해 발라드의 함량을 높인 R&B 발라드는 최근 몇 년간 차트 인디의 주류였다. 음반의 전반부는 공교롭게도 이 영역 근처에 방향성을 마련한 듯한데, 아이돌의 대립항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실 아이돌 멤버들의 솔로 프로젝트로 자주 활용된 스타일이기도 해서 충격적일 것은 없다. 중반부터 음반은 훨씬 더 가요적인 접근을 선명히 보여주는데 적어도 전반부보다는 안착된 흐름이 느껴진다. 솔로 가수로서 반드시 ‘아이돌팝’을 할 필요도 없고 한국 대중음악의 스펙트럼 안에서 걸맞은 노선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할 텐데, 대단한 신선함보다는 ‘윤지성이 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 셈이고 그 이상의 의미를 크게 뽑아내고 있지는 않다. 물론 그것이 스타의 힘이기도 하지만. 일단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음악적인 욕심 정도로, 조금 더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뉴키드
Newkidd
제이플로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25일

   

어딘가 ‘까리’해보이는 것들을 이것저것 끼얹다 이도저도 아닌 잡탕이 되어버렸다. 신인 때 가장 저지르기 쉬운 치명적인 실수. 멜로우한 (가혹하게 말하면 흔한) 봄내음을 풍기는 기타 트랙 ‘첫번째 봄’과 퓨처 사운드에 스페인어 가사를 끼얹은 ‘Tu Eres’까지. ‘뉴키드’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사실 사운드의 마감 자체는 나쁘지 않고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아이돌 데뷔 싱글 중에서는 꽤 괜찮은 퀄리티를 지녔지만, 범작 이상의 인상을 받으려는 순간마다 정돈이 덜 된 듯한 보컬이 감흥을 끌어내린다. 앞으로 조금 더 특색있는 무언가를 보여주기를 바라본다.



C.A.P
하늘에
티오피 미디어
2019년 4월 25일

  

작년부터 엇비슷한 몽롱한 힙합-트랩 싱글을 계속해서 내놓고 있는데, 취향이라면 별 할말이 없지만서도 별다른 성취도 의의도 없이 관성적으로 곡을 남발하는 것이 아닌가 조금 걱정이 된다. “그녀는 날 갖고 놀지”, “가끔 보면 넌 백여우같아”, “대사들은 뻔하지 걱정 마 친한 오빠” 같은 가사들이 계속되는 데에서 넌지시 느껴지는 ‘쎄함’ 역시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배진영
끝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워
C9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26일

   

천천히 덤덤하게 뱉어낸다. 다듬어지지 않은 목소리가 절절하지는 않지만 쓸쓸하다. 전형적인 발라드 형식이 조금 지루하지만 새로운 팀 합류를 앞두고 지난 추억을 잠시 되새김질하기에는 충분하다. 여전히 서툴지만 보컬리스트로서 한 곡을 끌어가는 배진영의 성장에 박수를 보낸다.



뉴이스트
Happily Ever After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29일

   

뉴이스트W는 ‘여왕의 기사’‘Love Paint’ 때 구축한 그룹관을 벼르고 또 벼르는 과정과도 같았다. 사운드 면에서는 계범주와 함께 정립한 금속성의 사운드를 요리조리 해체해 ‘Where U At’에서는 찌르르 울리는 전도체의 감각을, ‘Dejavu’에서는 차가운 표면감을, ‘Help Me’에서는 묵직하고 웅장한 사운드의 확장을 탐구해왔고, 세계관 면에서는 판타지 스토리텔링을 현실의 이별 서사와 결합시키며 정교하게 제련해왔다. ‘Bet Bet’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단단히 합금처리가 된 뉴이스트를 선보인다. 단호하게 내리찍는 플럭 사운드와 리듬은 금속성 사운드에 박력을 더하고, 렌과 백호를 탄탄하게 이어주는 민현의 합류로 보컬의 완결성 역시 높아졌다. 어느 때보다도 ‘여왕의 기사’와의 접점을 분명히 제시하는 뮤직비디오는 두말할 필요 없다. 어찌됐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물. 추천 수록곡은 후렴구로 넘어가는 드롭이 선명한 족적을 남기는 ‘Different’.



지구(GeeGu)
Moonlight
NOS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29일

   

2017년 10월 데뷔한 지구(Gate9)가 지구(GeeGu)로 이름을 바꾸고 1년 반만에 돌아왔다. 라틴 리듬과 여성의 중저음, 황야와 숲속의 마술적인 서사 등이 최근 트렌드 속 참조점들을 선명히 한다. 흠은 아니지만, 뮤직비디오의 묘한 빈한함이 의미심장한 장면들에 대한 호기심을 썩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저예산 필’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뮤직비디오 속의 비중과 편집이 서사나 상징에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감상자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기 때문인 듯하다. 버스(verse)는 저음을 많이 사용하고 프리코러스에는 5도씩 뛰어오르는 도약음이 지배적으로 사용되어 부르기에 썩 쉽지 않은 곡이다. 보컬 수행이 썩 잘 되고 있지는 않은데 멤버들의 실력이 문제라기보다는 디렉팅을 비롯한 스튜디오 작업의 불완전함으로 보인다.



더보이즈
Bloom Bloom
크래커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29일

   

참으로 ‘정직’하고도 건실하기 짝이 없는 ‘소년미의 정석’을 전면적으로 내세웠다. 한창 봄이라는 계절적 배경을 한껏 노린 것이 분명한 활기차고 눈부신 사운드가, 제목 그대로 화사하게 꽃처럼 꾸밈없이 피어난다. ‘Butterfly’와 ‘Clover 등 수록곡들을 통해 ‘봄’하면 떠올릴 법한 소재들을 그리 길지 않은 러닝타임 내에서 오밀조밀 예쁘게 엮어냈다. 다소 묵직한 변화구를 구사했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에는 제법 솔직하게 직구를 던져왔다는 느낌인데, 이번 활동을 통해 얻은 소기의 성과를 보아하니 그것이 통한 것 같기도 하다. 대책없이 해맑은 에너지가 돋보이는 ‘Clover’ 역시 추천한다.

더보이즈는 줄곧 준수하게 청량한 곡들을 선보여왔으나 활동곡에서만큼은 일종의 ‘가오’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멤버들의 역량과는 별개로 종종 어색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Bloom Bloom’은 끝내 이를 완전히 날려버리며 부담없이 상쾌한 고양감만을 취한다. 회를 거듭할수록 그룹 이미지를 멤버들과 잘 동기화 해나가는 것으로 보여 마음 한 켠에 자리하던 미심쩍음을 내려놓게 된다. ‘지킬게’의 아기자기함과 ‘Right Here’의 날렵한 활기를 한 데 잘 녹여내 그룹을 향한 신뢰 역시 저버리지 않는다. 조금 욕심이 있다면 이제는 단발적인 싱글을 넘어 꽉찬 볼륨의 앨범을 보고싶다는 점.

이번 회차의 추천작

더보이즈는 날렵한 소년의 이미지를 다채롭게 피워낸다. 극도로 세련된 트랙 위에 12명의 목소리가 투명수채화처럼 각자의 색을 간직한 채 중첩되어 곡을 완성한다. 그 덕에 스포트라이트를 독식하는 멤버 없이 골고루 눈에 띈다. 이상적인 소년상을 선명하게 그려내기 위한 A&R 팀의 노고가 엿보인다.



여고생
Baby You're Mine
리치월드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30일

   

초기 2NE1 같은 스타일을 굳이 지금 들고 나오는 것도 의아하지만 그 퀄리티도 모든 면에서 함량미달이다. 랩의 비중이 높은데 특별히 랩을 잘해서나 노래를 못해서라기보다는 노래를 만들다 보니 적당한 길이가 안 나와서 덧대 놓은 것처럼 들린다. 사실 여고생이라는 그룹 이름 자체도 문제적이지만, 여고생이란 이름의 그룹이 “너의 touch / 걱정은 마 집엔 안가도 돼” 같은 가사를 부르다니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정은지
같이 걸어요 (Duet. 10cm)
플레이엠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30일

   

낙천적인 무드의 달콤한 곡으로, 다분히 연극적인 연출들이 재미있다. 그것은 편곡이나 디렉팅보다 작곡 단계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할 말이 길어진다는 듯 끝 부분이 꼬리를 남기는 버스와 그로 인해 마치 숨을 가다듬는 것 같은 프리코러스의 시작, 한창 이야기하다가 말로 안 해도 안다는 듯이 대뜸 허밍으로 얼버무리는 대목 등이 그렇다. 곡의 기조 자체는 봄이면 봄이라서, 다른 시즌에는 봄이 지났기 때문에 또 나오는 꼭 그런 스타일이다 보니 지루해지기도 쉬운데, 아기자기하게 장면을 그려내는 요소들이 알콩달콩한 느낌을 더해 꽤 즐거움을 준다. BEOMxNANG과 정은지의 작곡 파트너십에 조금 더 기대하게 하는 싱글.



1st Listen 시리즈

열흘 동안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필진들의 단평

  1. 1st Listen : 2019년 2월 하순
  2. 1st Listen : 2019년 3월 초순
  3. 1st Listen : 2019년 3월 중순
  4. 1st Listen : 2019년 3월 하순
  5. 1st Listen : 2019년 4월 초순
  6. 1st Listen : 2019년 4월 중순
  7. 1st Listen : 2019년 4월 하순

시리즈 전체 보기 ≫

방탄소년단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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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Love Yourself”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하는 EP의 타이틀. 국내외의 다양한 레퍼런스가 먼저 눈에 띈다. 앨범 제목 “Map of the Soul: Persona”에서는 에픽하이의 “Map of the Human Soul” 시리즈가, 타이틀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는 넉살의 ‘작은 것들의 신’과 방탄소년단의 초기작 ‘상남자(Boy in Luv)’가, “Come be my teacher” 같은 가사에서는 요즘 활동 중인 미국 아이돌그룹 프리티머치(PrettyMuch)가 코믹하게 불러낸 ‘Teacher’가, 또 “Oh my my my”가 반복되는 가사에서는 트로이 시반(Troye Sivan)의 2018년 곡 ‘My My My!’가 떠오른다. 과거의 한국 힙합과 동시대의 미국 틴팝을 모두 가로지르며 방탄소년단의 지금을 쌓아올렸다.

곡 전체에 흐르는 타이트한 리듬 기타가 디스코 시대의 심상을 자아낸다. 찰랑이는 소재의 오버사이즈 수트나 고전 영화를 오마주한 세트 등도 레트로의 유행을 충실히 반영했다. 뮤직비디오의 컬러 팔레트는 푸른 하늘과 황금빛 햇살, 춤추는 방탄소년단의 핑크색 착장 정도로 좁힐 수 있고, 케이팝 씬 전반에서 인기였던 80년대를 지나 이제는 선샤인팝이나 디스코가 유행한 6~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는 인상을 준다. 가사에 어울리게끔 춤추기 좋고, 사소하고, 긍정적이다.

주 테마는 거의 마이너 펜타토닉 음계 안에서 놀지만 도, 미, 솔을 많이 써서 메이저 같은 느낌을 준다. 메시지 역시 그렇다. “이제 여긴 너무 높아 / 난 내 눈에 널 맞추고 싶어”나 “높아버린 sky 커져버린 hall / 때론 도망치게 해달라며 기도했어” 같은 가사에서는 높은 인기의 부담감을 말하지만 그 솔루션으로 제시하는 방향은 청자(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팬)와의 시시콜콜한 교류다. (그게 실제로 가능한지 여부를 떠나.) 마지막 트랙 ‘Dionysus’를 제외하고는 모두 ‘팬송’이라고 부를 만한 가사다. 팬을 대상으로, 언제나 당신이 궁금하고 애틋하며 고맙다는 내용 일색이다.

방탄소년단이 해외에서 여타 케이팝 그룹과 차별화되며 공고한 팬층을 쌓기 시작한 것은 ‘아이돌 그룹은 완전히 남에 의해 프로듀스된 상품’이라는 편견에서 조금 벗어난, 가사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그룹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아이돌의 역사가 오래된 국내에서는 어차피 아이돌에게서는 그런 것을 기대하지 않는 소비자가 많고, 그래서 초기의 방탄소년단은 그런 면에서 ‘촌스러운’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점이 가장 큰 어필 요소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큰 성공을 거둔 시점에 방탄소년단이 할 수 있는 자기 이야기란 대체로 이런 것이다. ‘팬들의 사랑에 감사하며 위로가 되는 노래로 보답하는 일’. 많은 것을 얻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복에 겨운 소리로 보일 것이고, 일부러 부리는 스왜그(swag)가 아닌 이상 전체적인 메시지는 상기한 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이미 빌보드에서 제일가는 ‘빌런’ 포지션은 빌리 아일리쉬(Billie Eilish)나 카디 비(Cardi B) 등 젊은 여성 아티스트들이 점했다. (코닥 블랙(Kodak Black) 등은 캐릭터로서의 ‘빌런’이 아니라 진짜로 욕먹는 난봉꾼의 위치다.) 방탄소년단이 현재의 빌보드 상에서 쐐기를 박을 수 있는 포지션은 ‘굿보이’다. 그 ‘굿보이 메시지’의 내용을 어떻게 다양화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과제로 보인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를 피처링한 할시(Halsey)는 미국 텔레비전 무대와 프랑스 콘서트 등에서 함께 무대에 올랐다. 오디오로 들으면 할시의 지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 작업의 주된 협업 요소는 무대에 함께 올라 춤을 추는 그 자체였다. 방탄소년단과 인종이 다른 ‘외국인’으로서, ‘나도 방탄소년단과 함께 춤추고 싶다’는 마음을 할시에 투영하는 팬들도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위주의 프로모션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방탄소년단
Map Of The Soul: Persona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12일

   


1st Listen : 2019년 5월 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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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김동한, 그로우비, 박봄, 골든차일드, 마이달링,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전지윤, 남우현, 오마이걸, 백예린, 시우민, 헨리, 태일의 음반을 다룬다.
김동한
D-Hours AM 7:03
위 엔터테인먼트
2019년 5월 1일

   
놓치기 아까운 음반

데뷔 미니앨범부터 시작한 시간 3부작의 마지막으로, 김동한이 작사에 전부 참여했으며 퍼포먼스도 상당 부분을 직접 구성했다고 한다. 앨범 참여도가 높은 만큼 곡을 이해하고 무대에서 표현하는 능력이 남달라 보인다. 능숙한 안무의 강약 조절과 여유 있는 무대 매너로 곡을 이끌며, 솔로임에도 무대를 꽉 채운다. 이전의 두 장에서는 섹시함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번에는 청량과 파워를 가미했는데 그것이 김동한과 참 잘 어울린다. 타이틀곡 ‘Focus’는 신스 사운드가 트렌디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주면서 비트를 통해 김동한 본연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걸 뒷받침한다. 수록곡 중에서는 노래할 때와 달리 저음으로 나른하게 내뱉는 래핑과 섹시한 매력이 두드러지는 ‘Bebe’를 추천한다.

놓치기 아까운 음반

지금까지 솔로 명의로 두 장의 미니앨범을 선보여왔으나, 솔직히 말해 ‘김동한’이라는 아티스트의 존재감은 어딘가 불안하고 흐릿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다소 부족해 보였다고 하면 오만일까. 그러나 그는 본작을 통해 ‘김동한’이 누구인지, 진정한 ‘김동한다움’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고 자신 있게 선언하는 것에 드디어 성공한다. 이전까지는 약점 가리기에 급급하다 못해 미처 숨기지 못한 약점을 고스란히 노출하고 마는 일이 잦았으나, 눈에 띄게 진보한 수행력과 확신에 찬 몸짓으로 무대를 온전히 장악함은 물론(‘Focus’) 피처링 없이 랩을 그럴싸하게 소화해내고(‘Bebe’) 발라드 한 곡을 진득하게 리드해내기도 하며(‘매일매일’) 솔로로서의 존재 의의를 기어코 증명해내고 만다. 그런 확신과 자신감은 작사와 퍼포먼스에 본인의 손길이 직접 닿아있다는 사실과도 아마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티스트 본인의 발전도 그렇지만, 그의 매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약점은 효과적으로 가려주는 잘 맞는 곡을 만났기에 가능한 결과이기도 했을 것. 느긋하고 능글맞은 ‘Bebe’, 짜릿하게 밀고 당기는 비트와 묵직하고 거친 신스가 돋보이는 ‘Focus’, 그런지한 뭄바톤 사운드를 내세운 ‘Idea’ 등 각 트랙의 면모 역시 탁월하고, 다섯 트랙을 꿰뚫는 자신만만한 에너지는 앨범을 하나로 묶어내는 유기성 그 자체다. 이제야 비로소 완전해진 김동한이, 바로 여기에 서 있다.



그로우비(Grow.B)
Let It
미듬 엔터테인먼트
2019년 5월 2일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평생교육원 재학생들이 모여서 결성된 그룹이라고 하는데 그냥 딱 대학생이 모여 만든 동아리 같은 느낌이다. 보컬은 아예 트레이닝 받지 않은 것 같고, 그렇다고 안무가 기가 막히게 좋다거나 춤을 정말 잘 추는 것도 아니다. 음원의 상태는 마치 집에서 핸드폰에 녹음을 하고 반주를 입힌 것 같은 느낌이라 당황스럽다. 허술한 배경과 어색한 연기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자니 내가 다 부끄러워진다. 현재 걸그룹, 아니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습생들조차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파악하고 제대로 된 트레이닝을 하고 나서 앨범을 냈으면 좋겠다.



박봄
re:Blue Rose
디네이션
2019년 5월 2일

   

전작을 통해 느꼈던 것들을 거의 그대로 느끼게 하는 리패키지. 용감한 형제는 부인할 수 없는 감각의 실력자지만 감성적인 곡에서는 항상 최선은 아니란 것이다. 경우에 따라 그 질척임이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기도 하지만, 박봄의 목소리가 짙은 호소력으로 다가오기보다는 축축하게 미끄러지는 점이 아쉽다. 그래서 (레게와는 별로 상관없지만) ‘봄 (Reggae ver.)’이 프로듀서 특유의 끈적한 그루브를 조여주는 것이 훨씬 반갑게 느껴진다. 박봄의 제2막이자 프로듀서와의 호흡 조정 기간이라 생각하면 초조할 것은 없어 보인다.



골든차일드
그러다 봄
울림 엔터테인먼트
2019년 5월 2일

   

골든차일드의 첫 시즌송. 첫 시도이지만 울림 선배 인피니트의 영향인지 매해 발표해온 것 같은 익숙함이 있다. 봄기운에 설레는 청자들을 겨냥한 어쿠스틱 시즌송이야 워낙 흔하지만, 휘파람이나 바이올린 카운터멜로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보컬 시퀀스 등 부드럽게 들릴 수 있는 재료로 날카롭고 예민한 사운드를 만들어낸 것이 매력적이다. 울림과 긴 시간 일해온 제이윤의 솜씨다.



마이달링
[Kung Chi Dda]
AL 엔터테인먼트
2019년 5월 2일

   

모모랜드가 차용한 어떤 것의 원형에 충실한 곡이다. “준비하시고 쏘세요”로 대표되는 유의 삽입구, 의성어와 감탄사의 넉넉한 사용이 이 곡의 지향점을 정확하게 드러내며 또한 상당히 효과적인 호흡을 선보인다. 행사 튠으로서의 성질을 매끈하게 갖추고 있는데, 아마도 제목과 훅을 통해서 의도했을 임팩트까지 달성하기에는 조금 역부족인 듯하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Cat & Dog (English ver.)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2019년 5월 3일

   

컨트리 테마에 트랩을 접목해 빌보드를 휩쓸어버린 릴나스엑스(Lil Nas X)의 ‘Old Town Road’에서 볼 수 있듯, 요즘 글로벌 유스 트렌드는 무슨 튠이든 일단 트랩 위에 얹어보자는 편인 것 같다. 고양이 강아지가 짓까불듯 두 음절씩 묶어 비트 위에 얹어놓기만 한 랩이 즐겁게 한 곡을 채운다. 딕션이나 심각한 메시지 같은 건 중요치 않고, 애초에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고양이 귀 합성처럼 ‘틱톡’시대에 딱 맞는 곡이다.



전지윤
The moment I loved
Jenyer production
2019년 5월 4일

   

EP이자 소설이라 명명한 “The moment I loved”는 스토리가 눈에 그려질 정도로 그 색채와 깊이가 뚜렷하다. 하룻밤의 강렬함은 트랙리스트를 따라 점차 옅어지는 한편 그리움은 짙어진다. 뮤직비디오 속 드랙 아티스트의 몸짓은 곡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며 그의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의 입을 통하지 않아도, 활자로 마주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이 느낌적인 느낌은 그가 구현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확고하기 때문일 것이리라. 전지윤의 ‘듣는 소설’, 그다음 페이지가 내심 기대된다.



오마이걸
THE FIFTH SEASON
WM 엔터테인먼트
2019년 5월 8일

   

생동감 있게 피어나는 판타지적 서정성은 이제 오마이걸만의 시그니처로 완연히 자리 잡은 듯하다. ‘다섯 번째 계절’은 언뜻 ‘비밀정원’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인상이 강한데, ‘비밀정원’에서 서정성을 한 번 피워낸 바 있는 작곡가 스티븐 리가 작업했다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오마이걸이라는 팀의 미덕은 무엇보다 상기한 ‘판타지적 서정성’과 ‘성장’이라고 생각하는데, 본작에서도 서서히 피어나듯 느릿하지만 단단한 성장이 엿보인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서드가 일전에 ‘불꽃놀이’를 평하며 언급했다시피, “‘사랑’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조차 수줍어하던 소녀의 이미지는 더는 보이지 않으며, 앞으로도 되돌아갈 것 같지 않다”는 점이랄까. 특히 초창기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수줍은 나머지 다른 말로 빙빙 둘러대곤 했다면 이제는 “사랑이면 단번에 바로 알 수가 있대”라며 심지 굳은 말투로 사랑을 논하고 있는데, ‘비밀정원’-‘불꽃놀이’로 쌓아온 성장 서사를 무너뜨리지 않고 유기적으로 이어가는 흐름으로 읽히기도 한다. 사운드나 서사뿐만 아니라, 생동감과 서정성을 함께 살린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 역시 팀의 고유한 시그니처로 자리 잡았음을 넷상에서의 활발한 바이럴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수록곡의 면면은 대체로 준수하고 흐름도 나쁘지 않으나, ‘다섯 번째 계절’ 인스트루멘탈 트랙을 제외하고 마지막 트랙 격인 ‘Checkmate’가 더 이어질 법도 한데 갑작스럽게 끝난 것만 같은 인상을 주는 등 마무리감이 매우 아쉽다. 타이틀곡과 마찬가지로 스티븐 리가 특유의 서정성을 발휘한 ‘소나기’, ‘으른미’를 한껏 뽐내는 ‘Vogue’와 ‘Checkmate’는 놓치면 아쉬울 트랙.

이번 회차의 추천작

데뷔 초기 오마이걸은 꽤나 ‘좋은 취향’의 그룹으로 여겨졌고 이는 고전 팝을 연상케 하는 화성감과 내추럴한 질감의 편성과도 연관이 있다. ‘비밀정원’부터 부쩍 신스의 비중이 커진 비트를 사용하고 있어 제법 변화한 셈인데 그럼에도 어떤 일관성을 유지하는 비결이 이 앨범에 담겨 있다. 데뷔 초기부터 특히 수록곡에서 보여준 레트로가 과거 음악 스타일의 요소나 특정 사운드보다는 차라리 해학적인 어조나 표정을 가져오는 것에 가까웠고 이는 이번에도 ‘미제’나 ‘Checkmate’에서 여실히 느껴지는 바이다. ‘Vogue’는 같은 방식으로 다른 시대에 접근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제법 널찍한 스펙트럼으로 구성된 앨범인데도 강한 일관성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음반이 표현하는 인물상이 매우 구체적이고 선명하며 그것이 팀의 색채로 완결성 있게 담기기 때문이다. 한 팀 혹은 한 장의 앨범이 담아낼 수 있는 음악적 스타일의 범주를 넓혀 나가는 흥미로운 방식. 이를 통해 팀이 성장하고 점점 입체감을 더해감은 물론이다.

일본 아니메 풍의 벅차오름은 마치 ‘비밀정원’이 품은 잠재력을 발산하는 듯하다. 감정을 확신하는 순간 뻗어 나가는 멜로디는 사랑을 필연의 언어로써 긍정하게 한다. 비주얼 콘셉트는 유화의 질감과 함께 하늘거리는 튜튜와 토슈즈, 박물관 등 클래식한 소재를 활용해 섬세한 이미지에 힘을 실어준다. 강도는 조금씩 달라도 촉촉함을 유지하는 트랙리스트는 부드러우면서도 탄력 있고, 자기의 감정 앞에 강단 있는 소녀의 모습을 그린다. 필연의 거센 흐름에 몸을 맡기던 인물은 물방울처럼 통통 튀기도 하고(‘미제’, ‘Tic Toc’, ‘Crime Scene’) 눈 앞에 펼쳐진 은하수를 한껏 끌어안는다(‘유성’). 줄곧 물을 연상시키던 트랙은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플래시처럼 번쩍인다. 깊은 물 속을 번쩍 비추는 섬광 한 자락 같은 ‘Vogue’와 ‘Checkmate’는 수분 함유량이 높은 ‘심해’ 바로 다음에 배치되어 약간은 얼떨떨하지만 기분 좋은 배신감을 준다. 이벤트성 기획으로 종종 등장했던 ‘오마이보이’나 콘서트에서의 과감한 선곡들로 미루어보건대 아티스트의 야심도 기획에 함께 녹여진 듯하다. 소녀의 내면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그들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그들이 가진 팔레트로 그려지는 그림을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남우현
A New Journey
울림 엔터테인먼트
2019년 5월 7일

   

발라드 기조의 솔로 활동에 느닷없이 록을 끼얹었나, 하고 들여다보면 사실 록을 선택했다기보다는 록이 흐르던 어떤 상상된 과거를 선택한 것에 가까워 보인다. 타이틀 ‘Hold On Me’와 이어지는 ‘Rain’이 (‘넌 나만 바라봐’의 누구나 알 수 있는 명시적 과거의 반대편에서) 1990년대 초중반의 팝/록 향취를 풍긴다. 남우현의 보컬은 유약한 듯한 외형 속에 (가요식으로 응어리진) 에너지가 있는 편이라 이를 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발라드일 것이 분명하지만, 심각하게 으름장 놓는 듯한 록에 날렵한 움직임을 실어낸 것이 사뭇 신선하게 느껴진다. 후반부의 ‘Crying Baby’에서 퓨처베이스로 뻗거나 ‘넌 나만 바라봐’에서 윤상을 상기시킨 뒤 ‘Flower’로 가라앉는 것 모두 각각은 남우현의 보컬과도 잘 맞고 나름의 일리도 있지만, 사이사이에 한 곡씩 빠진 것 같은 허전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앞선 곡들의 흐름이 차분하고 설득력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백예린
A-Teen2 Part 1
Playlist
2019년 5월 9일

   

백예린은 곡 소화 능력이 정말 뛰어난 가수라고 생각한다. 장르를 불문하고 어떤 곡이든 잘 어울리고, 다른 가수의 노래를 부르더라도 마치 본인의 곡처럼 부르는 능력이 있다. 또한 솔로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는 음반의 작사, 작곡에 높은 비중으로 참여해왔는데, 이번 OST에서도 작사를 맡았다. 맑은 여름날 같은 백예린의 목소리는 학교와 친구, 우정을 소재로 한 웹 드라마에 잘 어울리고, 친구에게 직접 말하는 듯한 가사는 마음의 위로가 되는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다.



헨리
제목 없는 Love Song (Untitled Love Song)
몬스터 엔터테인먼트그룹
2019년 5월 9일

   
이번 회차의 추천작

MBC ⟨나 혼자 산다⟩ 등의 방송에서 알려졌듯 헨리는 피아노, 기타 등의 악기를 수족처럼 다루는 멀티인스트루멘탈리스트다. ‘제목 없는 Love Song’은 섹션마다 악기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작곡되었다. 인트로와 프리코러스를 혼자 이끌어가는 재즈-발라드 피아노, 2절부터 겹쳐 얹히는 오르간, 브리지의 애절한 표정을 구현하는 기타 모두 악기의 성격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고전적인 형태의 팝 발라드다. 6/8박자에 넋두리처럼 매치한 휘성(Realslow)의 가사도 즉흥곡 같은 분위기를 한껏 살려준다. 그는 2007년 슈퍼주니어의 객원 멤버로 케이팝 씬에 데뷔하기 전에도 이미 실력을 인정받는 음악가였다. 지금 이렇게 케이팝 유행과는 상관없는 노래를 내는 것이 편안해 보인다.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시작하는 사랑 고백 노래이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가사인데, “너의 눈 너의 코 네 입술까지 다 노래로 만들고 싶었어”, “수많은 음표 속에 진심이 담겨있어”, “네가 나를 보면 웃으면 Sweet한 멜로디가 떠올라” 등 사랑을 고백하려는 상황에서 상대방을 상상하며 드는 기분이나, 어떤 말로 고백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을 묘사하여 가사로 풀어냈다. 거기에 헨리의 장난스러운 듯 귀여운 음색이 잘 어울리고, 진심을 다해 음표 하나 가사 하나 꾹꾹 눌러 쓰고 고백하려는 상황이 그려져 사랑스러움이 넘쳐흐른다.



시우민
이유 (You)
SM 엔터테인먼트
2019년 5월 9일

   

입대 전 따뜻한 발라드 곡을 팬들에게 선물하고 갔다. 입대 날짜인 5월 7일에 맞춰 곡의 길이가 5분 7초인데, 사소하면서도 섬세한 기획이 돋보인다. 시우민의 목소리는 얇고 독특한 편인데 가성으로 노래를 할 때 그것이 특히 돋보인다. 음악의 장르나 분위기에 따라 톤을 자유롭게 조절하는데 랩을 하면 강렬하게 내뱉으면서 댄스곡과 잘 어울리는 목소리가 되고, 노래할 때의 부드러운 미성은 발라드에 잘 어울린다. 엑소에서 서브 보컬과 서브 래퍼를 맡고 있지만 멤버 수가 많다 보니 파트가 그렇게 많지 않고, 유닛 첸백시에서는 주로 랩을 하기 때문에 그동안 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노래하는 시우민’의 음색과 가창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태일
머무는 별
세븐시즌스
2019년 5월 9일

  

심플한 발라드곡이지만 태일의 보컬로 특별해졌다. 그의 보컬은 테크닉 면에서 강약을 정확하고 섬세하게 조절할 줄 알고, 감정은 지나치지 않을 만큼 절제해 담는다. 블락비라는 그룹의 이미지에선 다 보여주기 어려웠던 능력을 솔로 작품으로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2019년 현재, 이런 노래를 전면에 내세우는 발라드 가수는 줄었지만 아이돌 그룹에 소속된 보컬리스트들이 해당 장르의 명맥을 잇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1st Listen 시리즈

열흘 동안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필진들의 단평

  1. 1st Listen : 2019년 3월 초순
  2. 1st Listen : 2019년 3월 중순
  3. 1st Listen : 2019년 3월 하순
  4. 1st Listen : 2019년 4월 초순
  5. 1st Listen : 2019년 4월 중순
  6. 1st Listen : 2019년 4월 하순
  7. 1st Listen : 2019년 5월 초순

시리즈 전체 보기 ≫

트와이스 –‘Fancy’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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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전환점이다. 긴 시간 토이사운드 무드의 타이틀만 발표해온 트와이스가 마침내 다음 챕터를 열었다. ‘큐트에서 섹시로’ 같은 단편적인 시선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변화가 곳곳에 있다.

곡 전체에 흐르는 독특한 신스 사운드가 일품이다. 플루트처럼 바람 느낌이 나면서도 효과를 주어 금속적인 텍스처다. 중간중간 터지는 “oh” 하는 샘플과 어우러지며 유로디스코가 될 거라는 힌트를 주지만, 1절 첫 파트 비트는 뭄바톤이다. 청자는 여기서 벌써 멈칫하며 ‘이제까지 트와이스가 하던 음악이 아니네’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리듬은 이내 디스코로 바뀌고, 이제까지 트와이스가 시그니처 삼아온 여러 가지 요소와 마주친다. “트와이스!”, “Hey!” 같은 ‘갱보컬’(이라고 불러도 될까?) 같은 외침과 9인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만드는 힘있는 군무, 훌륭한 가요곡의 제1 조건인 즐겨 따라부를 만한 멜로디 등 말이다.

“거기 너- Fancy you” 네 박자를 다섯으로 쪼개 성큼성큼 마이너 스케일을 거꾸로 내려오는 코러스 전반은, 뮤직비디오가 전하는 이전보다 어두우면서도 네온처럼 대담하게 빛나는 심상에 잘 어울린다. 음계 전체를 골고루 커버해서 다채롭고도 쾌속한 느낌이다. 코러스 후반에 예의 신스가 ‘라시도레미’ 하고 멜로디와는 반대로 상승하며 보컬이 비는 부분을 장식할 때, 이 확실한 목적을 갖고 만든 뉴트로 디스코곡에 이미 빠져들고 만다. 특히 채영이 “Fancy, whoo?” 하는 부분이 곡의 백미다.

트와이스는 긴 시간 ‘밝고 귀엽고 활기찬 소녀상’을 보여왔지만, 그 활기에 멤버들의 실제 목소리는 많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한다. 멤버들은 기획에 의견을 냈는데 수용되지 않은 경험이나, 의견을 냈다가 촬영이 길어져서 멤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 경험을 브이앱 등의 창구를 통해 언급한 적도 있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당연한데, 얼마나 체력적, 상황적으로 여의치 않으면 그럴까 우려가 되는 대목이기도 했다. ‘Fancy’가 담긴 “Fancy You” 미니앨범은 멤버들이 작곡, 안무 의견 등 다방면으로 참여했다. 자연히 퍼포먼스를 수행하는 그들의 만족도도 높아보인다.

코러스의 후반에서 자연스러운 톤의 정연이 툭 던지듯 “누가 먼저 좋아하면 뭐 어때” 하고 말할 때, 이제까지 보여온, 연애 감정 앞에 수줍거나 ‘당돌한’ 소녀, 대상으로서의 활기차‘보이는’ 소녀, 한없이 해맑아서 평면적으로까지 보이는 소녀, 그 소녀의 캐릭터에 마침내 균열이 갔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이 성장은 가사에서뿐만 아니라 음악의 무드와 트렌디해진 스타일링(옷이 지나치게 짧고 타이트해서 불편해보이는 것은 단점이다), 스포티함보다는 매혹이 늘어난 안무 모두에서 보인다. 좋은 케이팝 작품은 언제나 토탈 패키지다.

이전까지와는 꽤 다른 노래를 부르게 됐지만, ‘Fancy’는 트와이스가 부르는 다른 스타일의 곡이 아닌, 트와이스라는 팀에서 비롯된 변화다. 반복해 말하자면, 이것은 확실한 전환점이다. JYP 엔터테인먼트가 정말 트와이스의 커리어 맥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다시는 이 선 뒤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트와이스
Fancy You
JYP 엔터테인먼트
2019년 4월 22일

   



NCT 127 –“We Are Superhuman”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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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t127-wearesuperhuman

‘Superhuman’은 근래 SM 발매작 중에서도 단연 손꼽을 만한 만듦새를 자랑한다. 곡을 재생하자마자 쾌청하게 울려퍼지는 화음에 이끌리지 않기란 어렵다. (재밌게도 이는 2012년 수많은 청자들을 무릎꿇게 했던 f(x) ‘제트별’의 인트로와 유사한 화성구조다.) 프로듀서 탁이 주특기를 발휘해 만든 컴플렉스트로의 자장 위에서 멤버들은 각자의 음색을 뽐내며 자유로이 부유한다. ‘Regular’와 비교했을 때 음악 면에서는 랩 중심의 라틴 트랩에서 보컬 중심의 일렉트로 팝으로, 이미지 면에서는 사이버펑크 서울 뒷골목에서 가상의 사이버공간으로 큰 변화가 있다. 그러나 동일하게 (레트로의 향취가 살며시 베인) 미래도시의 감각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룹의 서사를 이어보려는 노력이 느껴진다.

그러나 문제는 ‘Superhuman’이 그리는 미래도시의 감각이 과연 NCT 127이 고수해온 ‘네오 시티’의 감각과 동일하느냐는 것이다. ‘Superhuman’의 촘촘한 화성과 밀도 높은 사운드는 공간감과 도회성으로 대표되는 NCT 127의 ‘네오 시티’라기보다 ‘SM 타운’의 유구한 공식을 따른다. 미래적이고 초인간적인 이미지 역시 동방신기의 ‘Humanoid’, 샤이니의 ‘Everybody’, 엑소의 ‘Power’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 양 보인다. 이러한 기시감은 이식된 평행우주를 보는 듯한 이물감을 불러일으키며 기존 SM의 ‘문화기술’과 구분되는 ‘신-문화기술’을 표방하겠다던 팀의 방향성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Superhuman’을 주축으로 다수의 SM 보이그룹 곡들을 합친 매쉬업. 매쉬업을 통해 도리어 곡의 본질이 드러난 듯하다. ‘Superhuman’은 SM의 표준 그 자체다.

이는 비단 타이틀곡의 문제만은 아니다. “We Are Superhuman”은 후반부로 갈수록 NCT 127의 색채가 옅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사실 앨범의 리드 싱글이자 1번 트랙인 ‘Highway to Heaven’만 해도 기존 NCT 127의 도회성을 훌륭하게 변주한 곡이다. ‘Sun & Moon’과 같은 기존의 보컬 중심 수록곡의 연장선상에 놓이며, 태용-마크의 강렬한 콤비 플레이에 비해 회자되지는 못했으나 특유의 부력으로 노래에 공간감을 불어 넣으며 그룹 사운드의 어반함을 지탱하는 역할을 해온 보컬 멤버들을 전면에 배치해 그룹 색채의 발현 통로를 훌륭하게 이관한다. 잠재되어 있던 자원을 끌어내 그룹의 개성을 또 다르게 구현해내려는 방식에는 도무지 흠잡을 곳이 없다. 그러나 이어지는 ‘Superhuman’은 수면 위로 끌어 올려진 보컬을 단지 SM의 표준을 구현하는 재료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어지는 수록곡들은 다른 그룹에게 갔어야 하는 곡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의 이질감을 불러일으킨다. (‘아 깜짝이야’는 샤이니가 ‘Romance’와 같은 곡에서 시도했던 세련된 이국적 팝을, ‘시차’는 동방신기와 엑소가 주로 선보여 온 전통적인 SM 발라드를, ‘종이비행기’는 키의 솔로앨범과 NCT 드림의 곡들을 떠올리게 한다.) 전체적으로 공기를 한소끔 더 머금은 듯한 사운드의 질감과 그 틈새를 더욱 벌리며 곡을 환기하는 보컬이 NCT 127의 명맥을 이어주고는 있으나, 실연자로 인한 필연적인 차이를 넘어선 차별점을 짚어내기 어렵다.

노선 변경이라기보다 경로 이탈처럼 느껴지는 급선회의 배경에는 팀 내외에 걸친 여러가지 변화가 존재한다. 우선 샤이니, 엑소가 솔로/유닛 활동에 주력하고 있는 현재 정통 SMP를 그룹 단위로 효과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보이그룹은 사실상 NCT밖에 없다. (관록과 두 멤버 간 케미스트리에 집중하며 비교적 칠(chill)한 음악을 선보이고 있는 동방신기, 라틴뮤직과의 접합으로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슈퍼주니어는 논외다.) NCT 중에서도 SM이 야욕을 본격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그룹은 NCT 127이다. NCT Dream은 유동적인 연합 유닛으로 졸업 체제를 고수하고 있으며, NCT의 중국 유닛으로 예정되었던 WayV는 형식적으로 NCT에서 완전히 분리된 뒤 폐쇄적인 중국 시장 안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충수에 빠진 세계관을 타개할 활로로서 제시된 것이 아마 NCT 127의 북미 진출이었을 것이다. NCT가 초국적 시스템으로 기능할 수 없게 된 이상 NCT 127 단일 유닛에 글로벌 그룹으로서의 입지를 부여한 것이다. 북미에 자리매김 하려는 입장에서 분명 북미가 케이팝에 거는 ‘보이밴드 팝’의 기대치를 의식했을 것이고, ‘Superhuman’은 그 결론으로서 훌륭한 곡이라 할 수 있다. NCT가 기존 SMP와 차별화된 그룹 색으로 북미 팬들에게 소구한 부분도 있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미심쩍긴 하지만, 이전과 같은 그룹 색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인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보컬 멤버 정우가 투입되고 퍼포먼스 멤버 윈윈이 함께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화려한 퍼포먼스 중심의 그룹에서 보컬 중점 그룹으로 무게추가 기울었기 때문이다.

물론 위의 상세한 배경 해석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다. 하지만 이 급작스러운 변화가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계를 넘어”라는 가사가 유난히 공허하게 들려온다.) 과격하게는, 결국 무뎌진 ‘네오’는 그토록 자신 있게 선포했던 ‘신-문화기술’의 파기 선언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Neo’ Culture Technology가 아닌 기존의 Culture Technology로, Neo ‘City’가 아닌 SM ‘Town’으로 그들은 분명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다만 앨범의 아우트로 ‘We Are 127’에서 이전작들과 본작의 사운드스케이프를 아우르며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가려는 반동의 힌트가 제시되고 있기에, 이를 실패라 단정짓기에는 이르다. “We Are Superhuman”은 전환‘기’를 쌓아올리는 것이 아닌 전환‘점’을 특정하기를 택한 작품이다. 이 전환점이 어떠한 작용을 하게 될지는 다음 앨범이 나와야 비로소 확실해질 것이다. 판단은 그때까지 보류하기로 하자.

NCT 127
We Are Superhuman
SM 엔터테인먼트
2019년 5월 24일

   


1st Listen : 2019년 8월 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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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립니다. 아이돌로지의 “1st Listen” 코너가 다소 개편되었습니다. 최대한 많은 아이돌 음반을 간단하게라도 다루고자 하는 취지입니다. 향후 “1st Listen” 리뷰가 나오기 전에 더 많은 음반 목록을 보다 빠르게 접하실 수 있도록 음반 목록도 따로 게재할 예정입니다. 또한 리뷰가 누락된 8월 중순 이전의 음반들도 병행하여 게재할 예정입니다. 아이돌로지에 많은 관심 가져주시는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2019년 8월 중순 발매반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더 로즈, JINU, 몬트, 호우(손호영, 김태우), 핑클, Viini(권현빈), 소녀주의보, 에버글로우, 더 보이즈, 타겟, 소영, 풍뎅이, 홀릭스, 레드벨벳의 음반을 다룬다.
더 로즈
Red
제이앤스타 컴퍼니
2019년 8월 13일

   
🧐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 김우성 솔로 데뷔에 이은 더로즈의 컴백.
브리티쉬를 살짝 내려놓고도 팀의 색을 유지한다.
😘
드디어 'California'를 음원으로!
😢
굳이 꼽자면 타이틀에서 도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 투보컬 체제를 잘 활용했던 팀이라 아쉽다.
 


JINU
JINU's Heyday
YG 엔터테인먼트
2019년 8월 14일

   
🧐
위너 김진우의 첫 솔로곡
유일하게 타고난 재능인 얼굴을 요긴하게 이용하는 뮤비
😘
매우 부담 없이 그루브를 타며 가요적으로도 즐길 만한 트랙.
김진우의 소년스러운 목소리와 화려한 베이스가 이렇게 잘 어울릴줄이야.
😢
솔로보다 위너 유닛곡에 가깝지 않나.
어쩌면 단체 버전이 더 재밌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내지 못하는 이유는...
 


몬트
대한민국만세
FM 엔터테인먼트
2019년 8월 14일

   

일감 후 기분이 상당히 복잡해진다. 이렇게 비장한 얼굴로 애국주의 혹은 국수주의 가사를? 마지막에 나오는 아리랑 연주에 무너졌다. 비-서울 정체성을 강조하는 팀으로서, 이번 싱글을 인디 아이돌적인 행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또한, 멤버들의 자작곡이라는 점에서 2000년대 초반 그룹 케이팝의 '0.5'보다는 덜 민망하다.



호우(손호영, 김태우)
친구는 이제 끝내기로 해
P&B 엔터테인먼트, 스톤 뮤직 엔터테인먼트
2019년 8월 16일

   
🧐
지오디 보컬 라인 둘의 듀엣.
😘
부담없이 듣기 좋은 흥겨운 곡.
듀엣으로 접하는 두 명의 음색 조합이 예상 외로 신선한 면이 있다.
두 멤버 각자의 시원하고 유쾌한 음색으로 흐르는 후렴.
😢
도입부의 호영은 훨씬 매력적으로 들릴 음역과 뉘앙스가 따로 있을 텐데.
 


핑클
FIN.K.L Best Album
DSP 미디어
2019년 8월 18일

  
🧐
캠핑클럽에 맞춰 나온 예상 가능한 베스트 앨범.
일단은 리마스터.
😘
방송을 통해 벅차오른 추억을 되새기고 싶은 팬들이라면.
뒤늦게 그들의 음악이 궁금해진 이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핑클의 에센셜 플레이리스트가 하나는 필요
😢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것 이외의 의미를 찾아볼 수 없는 앨범.
아티스트를 향한 리스펙트를 갖추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돈벌이에만 급급한 것이 너무 뻔히 보이는 결과물.
 


Viini(권현빈)
Dimension
YGX
2019년 8월 19일

   
🧐
JBJ 권현빈의 솔로 데뷔.
전곡에 작사 작곡 참여.
😘
위악적일 정도의 성적 기호를 선택한 과감함.
😢
썩 어울리지 않는 오토튠 범벅의 사운드.
재미도 없는데 센스 있다고 착각하는 듯한 비유로 채워진 가사.
가사가 색드립에 가깝게 들리는데 재치있거나 매력적이기보다는 민망하다.
 

무대를 섹시 컨셉의 다수의 여성 댄서와 꾸린 것이 마이너스 요소. 영어 제목이 같았던 소녀시대의 히트곡도 여성의 '서비스'를 전면에 내세워 문제가 됐던 것을 기억해볼 때, 이 곡은 차라리 그런 면에서 전복적일 수 있었던 가사이기는 했다. 하지만 무대 구성 때문에 '서비스'보다는 지니의 '능력'만이 강조되었다.



소녀주의보
We Got The Power
뿌리 엔터테인먼트
2019년 8월 19일

   
🧐
'복지돌'로 소소한 화제를 모은 바로 그 그룹.
노선도 이미지도 급변했다. 통속적인 '소녀' 이미지를 강조해온 전작들과 확연히 다른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
베이스의 활용이나 곡의 구성 등에서 참신한 곡을 만들려 한 흔적이 엿보인다.
구슬에게서 랩과 댄스 모두 미래를 기대하고 싶다.
😢
첫째, '걸크러시' 타령 그만. 둘째, 여전히 아무런 특색이나 변별점이 보이지 않는다.
유튜브 뮤직비디오 설명에 '걸크러쉬로 돌아온 소녀주의보 "더 이상 소녀가 아니니 주의하세요"'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악기끼리 박자가 안 맞는 것은 고의였을까?
 


에버글로우
Hush
위에화 엔터테인먼트
2019년 8월 19일

   
🧐
에버글로우의 두 번째 싱글.
3박자 리듬의 난폭한 그루브.
😘
2019년 케이팝이 그래도 재밌을 수 있는 이유. 데뷔작에 이어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블랙핑크, (여자)아이들 같은 팀들의 꾸준한 성과가 또 다른 팀의 과감한 시도를 가능하게 해주는 선영향에 대해서.
전투적이고 긴박한 무드를 위한 모든 것이 다 쏟아져 들어가 쾌감으로 수렴한다.
😢
'Adios'의 드럼과 베이스의 강조가 청음 환경에 따라 조금은 과잉으로 다가올 수도.
드롭 직전의 브레이크가 다소 반복적이라 긴장감을 끌어올리기보다는 '미루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기다린 보람은 충분하지만.
 
놓치기 아까운 이번 회차의 추천작

이제까지 해외 자본 프로듀싱 케이팝 그룹이란 대부분 일반적인 한국 그룹을 보수적으로 따라가는 형태에 그쳤다. 원류가 K가 아니므로 최대한 케이팝의 평균치에 맞춰야 한다는 계산이었을 것. 그래서 통념적인 '큐트에서 섹시로' 같은 '걸그룹 생애주기'를 따르기 마련이었다. 에버글로우는 이것을 무시하고 돌진하는 점에서 케이팝의 모방이 아닌 케이팝 그 자체다. 새 싱글 'Adios'의 전투적 사운드는 블랙핑크의 근작 'Kill This Love'와 비슷한 지점을 겨냥하지만, 고의로 극단까지 밀어붙였던 그 곡보다는 치고 빠지는 완급 조절이 매끄럽다. 후렴이 보컬 코러스가 아닌 드롭인 점도, SM이나 빅히트과 작업한 해외 작곡진을 기용한 것도, 한국인 멤버가 다수를 이루는 점도, 하다못해 <프로듀스> 시리즈로 얼굴을 알린 것도, 모두 케이팝 기획이다. 그것도 씬의 가장 첨단을 영리하게 이용한. 세 개 언어의 작별 인사를 단 네 음에 연음 처리해서 불러내는 "Goodbye Au revoir Adios"의 입안에서 구르는 느낌이 좋다.

놓치기 아까운 음반

‘봉봉쇼콜라’는 그 자체로도 빛나는 트랙이었지만, ‘걸그룹’의 ‘데뷔곡’으로서는 흔치 않은 행보였기에 더 빛날 수 있는 트랙이기도 했다. 이제 막 데뷔한 걸그룹이 여태껏 보인 적 없는 기세를 가득 품고 있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이번 타이틀곡 ‘Adios’에서도 에버글로우는 전례가 없는 기세를 보란듯 한계까지 몰아세운다. ‘Goodbye Au Revoir Adios(무려 3개 국어가 공존한다는 점마저 ‘K’하지 않은가)’를 주문처럼 반복하다 마지막에 속삭이며 텐션을 훅 떨어뜨리고는 곧바로 흉포하게 몰아치는 사운드는 소름이 돋기까지 한다. <프로듀스 101>과 <프로듀스 48>에서 활약한 바 있는 시현과 이런을 주요 포인트에 적절히 배치한 와중에 미아의 남다른 존재감과 수행력이 유독 눈을 사로잡는다. 제복을 갖춰 입고 마치 마칭밴드 같은 각 잡힌 군무를 선보이는 모습을 데뷔한지 겨우 반 년 밖에 안 된 걸그룹에게 기대할 수 있었을까. 걸그룹이 통념적인 보이그룹의 것을 지향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통념적인 걸그룹의 것을 답습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에버글로우는 이 모든 통념을 무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심할 여지 없이 올해 가장 주목받아야 할 신인이다.



더보이즈
Dreamlike
크래커 엔터테인먼트
2019년 8월 19일

   
🧐
'Giddy Up'-'Right Here'-'Bloom Bloom'을 잇는 더 보이즈 the 청량팝 시리즈.
런던노이즈('Water')와, 최근 눈에 자주 띄는 프로듀스팀 13의 작업도 포함('Complete Me').
😘
중소기획사 남돌의 판뒤집기는 춤에 있다. 댄스를 전면에 내세운 노래에 맞춰 각잡힌 안무가 볼만하다.
 

색조와 채도를 달리하면서도 지금까지 꾸준히 뚝심있게 지켜온 청량한 소년미를 이번에도 어김없이 전면에 내세웠다. 굳이 비유하자면 ‘Giddy Up’의 톡 쏘듯 상쾌한 청량함‘Right Here’의 기분 좋은 타격감, ‘Bloom Bloom’의 꾸밈없이 화사한 소년미를 툭툭 떼어다 섞어놓은 느낌이랄까. 청량한 와중에도 놓지 않고 꿋꿋이 지켜오던 ‘가오’를 던져버리고 ‘부담없이 상쾌한 고양감’을 추구하기 시작한 ‘Bloom Bloom’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적시에 폭발하듯 시원하게 터뜨려내며 청자에게 본능에 가까운 쾌감을 선사한다. 드디어 케빈과 뉴라는 두 메인보컬을 제대로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 다인원이라는 특징을 장점으로 살린, 역동적으로 잘 짜인 퍼포먼스도 인상적이다(재차 말하는 것이지만, 비슷한 연차의 팀 중 다인원을 이렇게 제대로 잘 활용하는 팀은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리듬감이 탁월한 ‘Complete Me’, 일렁이는 신스 사운드가 돋보이는 ‘Summer Time’도 놓치지 마시라.



타겟
S the P (별의이야기)
케이제이뮤직 엔터테인먼트
2019년 8월 20일

   
🧐
실화냐'라는 제목으로 이런저런 인상을 남긴 바 있는 타겟의 컴백.
방탄소년단과 몬스타엑스의 초창기 에너지와 콘셉트를 적절히 섞어 벤치마킹한 듯한 이미지.
😘
딱딱 들어맞는 절도 있는 군무.
적지 않은 연습량이 느껴진다.
꽤 좋은 속도감 속에 우악과 히스테리와 미성이 뒤섞이는 쾌감.
😢
전반적으로 썩 인상적인 부분이 없는 곡과 안무.
과하게 덧씌운 오토튠이 래핑에 대한 청자의 집중을 깨뜨린다.
 


소영
WK ENM
2019년 8월 20일

   
🧐
스텔라 출신 소영의 솔로 데뷔작.
에이스의 'Under Cover'를 작업한 GALLERY의 프로듀스.
😘
시원시원하게 뻗는 보컬과 퍼포먼스가 인상적
😢
자칫 청하의 아류처럼 받아들여질 여지
다소 식상한 안무 구성
 
놓치기 아까운 음반

매우 정직하게 쓰여진 곡이다. 리드미컬하게 시작하는 버스(verse)에 이어 피아노와 함께 쿵 하고 가라앉는 멜로딕한 프리코러스, 그리고 808 스네어가 돌아가면서 후렴으로 돌입. 프리코러스가 다소 길게 느껴진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정격적이라고 해도 좋을 듯한 구성이지만, 그런 안정감 덕분에 후렴은 매우 정확하게 폭발한다. 부드러운 톤으로 노래하던 소영이 쥐어짜내듯 "Gimme that" 하고 서둘러 선행하는 후렴이 매우 인상적으로 이 호흡을 리드한다. (후반의 드롭에서도 이 대목을 되살린 것은 매우 일리 있는 선택이다.) 후렴부를 비롯해 전체적 멜로디라인은 상당히 통속적인 종류의 것인데, 그것이 가요적 친숙함은 십분 발휘하면서 궁상이나 지리멸렬함에게는 한 순간도 내주지 않는다는 점 또한 인상적이다. 긴박감이 충분히 뒷받침된 비트와 신스도 이에 일조하고 있을 것이다. 브리지로 넘어가는 부분이 멜로디에 의해 좀 더 몰아쳐주거나, 몇 군데 다소 덧대어진 듯한 부분을 덜어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없지는 않지만, 안정감 있고도 다채로운 보컬이나 볼 거리 많은 안무 등이 충분히 보완해낸다.



풍뎅이
Nice Shot
도마 엔터테인먼트
2019년 8월 20일

  
🧐
유머와 파격으로 독특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풍뎅이의 10개월만의 신작.
😘
2019년에 이런 사운드와 가사의 노래를 내놓을 생각을 할 수 있는 패기를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받아들여야 할까.
 

'배추보쌈'으로 보여주던 너스레를 찾아볼 수 없다. 같은 B급 감성이어도 자기가 즐거운 너스레와 남성 청자의 즐거움에 복무하는 아양은 현저히 다른 애티튜드고, 이것이 내용에 큰 차이를 만들었다. 좋은 그룹이 바나나걸 류의 나이트 감성으로 수렴되어버린 것이 아쉽다.



홀릭스
I'm Ur Fan
LPA 뮤직 엔터테인먼트
2019년 8월 20일

   
🧐
아이돌의 입장에서 팬들과 직업, 안티 등을 바라보는 시선의 가사가 눈에 띈다.
😘
가사와 콘셉트는 다소 상투적이지만 밝고 경쾌한 사운드와 잘 조화된다.
랩 파트가 인상적.
😢
레코딩과 마스터링이 조금만 더 완성도 있었더라면.
 


레드벨벳
The ReVe Festival Day 2
SM 엔터테인먼트
2019년 8월 20일

   
🧐
레드벨벳의 여름 연작 중 두 번째.
😘
쨍하고 번쩍이는 팝 사이로 숨 고르게 했던 부드러운 수록곡 무드를 앨범 전면으로 끌어낸 대담함.
2017년 "Perfect Velvet"으로 대표되는 강렬한 긴장감을 슬쩍 풀어내는 것 역시 그들이 해내야 할 도전이었을 지도 모른다.
레드벨벳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걸 들려주고 있다.
😢
"Day 1"보다 한여름에 듣기 더 적합한 느낌이라 발매 순서가 달랐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Zimzalabim'에 이은 레드벨벳의 여름 후반전. 전작은 준수한 성적을 거뒀으나 호불호가 크게 갈렸다. 파트별로 분절되어 이어붙인 콜라주 같은 구성에, 기억에 남는 멜로디 파트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썸머밥(summer bop)이 되기에는 치명적이었다. '음파음파'는 곡의 구성 형태로서는 이런 'Zimzalabim'의 거의 정반대에 위치한다. 20세기 가요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톤을 유지하는 멜로디에 중간중간 '음파 음파' 하는 발랄한 챈트를 곁들였고, 대부분의 보컬 파트는 솔로 아니면 유니슨으로 처리해서 따라 부르기 쉽게 만들었다. 프리코러스나 브리지, 마지막 코러스에서 케이크 위의 체리처럼 레드벨벳표 화성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음악적으로 아이돌 그룹은 대개 코러스 그룹으로 기능한다. 레드벨벳은 서로간의 보컬 밸런스가 특히 좋은 팀으로, 중창단으로서의 매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 이 팀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 같다. '레드'와 '벨벳' 콘셉트를 불문하고 말이다.

여름을 온통 새빨갛게 물들였던 "The Red Summer"를 시작으로 레드벨벳은 여름 시즌을 겨냥한 앨범을 꾸준히 내왔는데, 시즌이 거의 막바지에 이른 시점에서야 본작이 발매되었다는 사실은 다소 의아하다. 그러나 항간에 떠도는 "레드벨벳이 음악을 끌 때까지 여름이다"라는 반응에서 대중이 레드벨벳을 향해 가진 어떠한 기대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듯 하다. 모르긴 몰라도 그들이 있어 여름을 아주 조금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매년 여름 그들에게 진 빚 때문이 아닐까. 다소 난폭할 정도로 날선 사운드의 타이틀곡을 내세웠던 전작과 달리 이번에는 타이틀곡을 비롯하여 앨범 전반적으로 무척이나 부드럽게 잘 깎여 다듬어진 사운드를 느낄 수 있다. 숨이 막힐 정도로 무더웠던 한여름보다는 더위가 한풀 꺾인 늦여름 시즌에 보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동시에 연작의 중간을 잇는 일종의 가교로써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인상도 있다. 7-80년대 팝을 연상시키는 ‘Love Is The Way’, 브라스와 풍성한 코러스를 얹은 밴드 사운드가 돋보이는 ‘Ladies Night’ 등 레트로한 질감의 수록곡들이 특히 앨범 전체의 무드를 주도하며 부드럽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조금 늦긴 했지만, 어쨌든 이번 여름도 레드벨벳 덕분에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1st Listen 시리즈

열흘 동안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필진들의 단평

  1. 1st Listen : 2019년 3월 중순
  2. 1st Listen : 2019년 3월 하순
  3. 1st Listen : 2019년 4월 초순
  4. 1st Listen : 2019년 4월 중순
  5. 1st Listen : 2019년 4월 하순
  6. 1st Listen : 2019년 5월 초순
  7. 1st Listen : 2019년 8월 중순

시리즈 전체 보기 ≫

리포트 : 슬픔의 케이팝 파티 ① 토크 세션 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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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슬픔의 케이팝 파티〉라는 수상한 제목의 파티가 열렸다. 폭발적인 호응 속에 이어지는 이 기획을 아이돌로지가 들여다 보았다. 지난 5월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열린 〈슬픔의 케이팝 파티〉 현장 리포트. 〈슬픔의 케이팝 파티〉는 9월 28일 부산 금사락에서도 개최된다. [예매 링크]

슬픔의 케이팝 파티 1일차 토크 세션

1부 〈My Mad K-Pop Diary: 웃거나 울거나 망하거나〉

Text by 하루살이

2019년 5월 11일 〈현대카드 Curated 52 슬픔의 케이팝 파티〉(이하 ‘슬케파’) 1일 차 토크 1부는 〈웃거나 울거나 망하거나〉라는 타이틀 아래 김윤하 음악평론가와 조한나 음악기획자의 대담으로 진행되었다. 두 사람은 우선 관객의 연령대부터 조사했다. 현장에는 일부의 80년대 생, 대다수의 90년대 생, 소수의 00년대 생이 참석해 있었다. 둘은 스스로 ‘라디오키드 대표’와 ‘클럽키드 대표’라 칭하며 케이팝 체화 방식의 세대 차를 시작으로 케이팝의 역사를 훑고, 관객들과 공감 한풀이 장을 열었다.

진행자들은 “개방”을 키워드로 케이팝의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초기 댄스팝은 새로움이자 젊음이었고 대중음악을 망치는 주범으로 지목되었다. 이 꾸준한 혐의에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윤일상, 주영훈, 김창환으로 90년대 초반 “가요계를 더럽힌 댄스음악”을 요약했다면 그다음은 서태지 이후 H.O.T.와 젝스키스, 본격적인 1세대 아이돌의 전성시대였다. 동시에 베이비복스 등 여성 아이돌의 수난시대였음을 지적하며, 설익은 팬덤 문화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슬픔의 케이팝 파티 1일차 토크 세션

1세대 그룹들의 해체 이후 장나라, 비, 이효리 등의 솔로 아티스트로 대변되는 1.5세대까지 지나면 정말로 “우는 가수”들의 이름이 등장했다. 브라운아이즈, 거미, 빅마마, 씨야, 먼데이키즈, 버즈 등 그 시절 아티스트들이 호명될 때마다 현장에는 질색 어린 탄식이 이어졌다. 급기야 “버즈는 슬케파에 입장 금지입니다” 발언까지 나왔다. 이와 대조적으로 “SMP가 남기고 간 것”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자 객석에서 NCT의 응원봉이 빛났다.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바로 이들이 “SMP가 남기고 간 것”, 케이팝의 주 소비층이며 그래서 우리는 SM과 유영진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두 호스트는 2007년을 ‘케이팝 원년’이라 칭했다. 그해 원더걸스의 ‘텔미’와 빅뱅의 ‘거짓말’이 발매되었고 소녀시대와 카라가 데뷔했다. 이른바 ‘2세대 아이돌’, 우리가 현재까지도 즐기고 있는 형태의 케이팝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의도적인 해외 진출이 끼친 영향과 관련된 경험담이 이어졌다.

김윤하 평론가는 토크를 마무리하며 가장 세련된 케이팝으로서 f(x)의 ‘4 Walls’를 선곡했다. 노래와 함께 공감의 탄성이 현장을 채웠다. ‘슬픔의 역사’는 결국 이 파티의 존재 의의로 귀결되었다. 개방에서 태어나 변칙과 파격으로 연명한다. 여전히 무한에 가까운 수용력으로 변주가 이어진다. 매일 울고 망할지언정 종말을 고하기엔 아직 생동한다. 이런 케이팝을 놓지 못하는 우리가 모여 이 역사에 ‘슬픔의 케이팝 파티’라는 한 줄을 더 보태는 자리였다.

슬픔의 케이팝 파티 1일차 토크 세션

2부 〈Play List Contest: 나의 친구들〉

Text by 심댱

‘슬케파’의 콘셉트는 ‘다이어리’라고 한다. 이번 토크 세션 중 ‘플레이 리스트 콘테스트(이하 P.L.C)’는 마치 다이어리를 꾸미는 것처럼 개개인의 케이팝을 조명하는 시간이었다. 특히 5월 11일 토크 2부에서는 너와 나, 우리의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케이팝에 스며든 심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보컬리스트 지망생 신혜림과 유튜버 예지주가 참여한 ‘P.L.C: 나의 친구들’은 독특하게도 ASMR 스타일로 진행되었다. 장난스럽게 속삭이면서 토크를 이어가던 그들이 마치 또래 친구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세션 중 인상 깊었던 플레이 리스트를 몇 꼽아보자면, 프리스타일(Freestyle)의 ‘Y’, 이지(izi)의 ‘응급실’ 등 싸이월드 시대를 회고하는 플레이리스트 ‘쵸재깅(cyworld를 한글 타자로 잘못 쳤을 때 나오는 단어)’은 지나간 웹에 묻은 추억을 소환했다. 한편 플레이리스트 ‘CCTV가 널 감시할지라도’는 정규직들이 퇴근해 텅 빈 사무실에서 야근하는 비정규직의 애환을 노래로 달래는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플레이리스트의 대표곡이 재생될 때마다 떼창하거나 몸서리를 치는 등 관객의 공감 어린 반응은 토크를 더욱 더 풍성하게 했다.

슬픔의 케이팝 파티 1일차 토크 세션

‘사랑’을 테마로 한 예지주의 플레이리스트는 토크 중 가장 많은 호응을 얻었는데, 그가 플레이리스트를 꾸리면서 남긴 소개 글은 다음과 같다.

“음악이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다. 내 친구이자 동반자이며 기쁜 날에는 더 기쁘게 해주고 슬플 때는 위로가 되어준다. 사랑을 하며 울고 웃으며, 그리고 사랑을 시작할 때 듣게 된 노래들.”

그의 플레이리스트에서는 아티스트를 향한 애정을 듬뿍 느낄 수 있는 곡(황보 ‘R2Song’, 소녀시대 ‘Run Devil Run’)부터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이 있는 곡(엄정화 ‘초대’, 인피니트 ‘내꺼하자’)까지 담겨 있었다.

흔히 아티스트에게 돌아가는 케이팝의 스포트라이트를 대중에게 옮겨본 이 시간은, 처음엔 다소 어색했지만 좋아하는 노래를 두고 나누는 대화가 그렇듯 즐거웠다. ‘나의 케이팝’을 말하면서 그 노래에 꽂아두었던 나의 추억과 생각까지 함께 나눈 이 자리는 취향이 남긴 흔적을 우리 스스로 느끼게끔 했다. 그건 바로 ‘케이팝 고인물’이라 자조하지만, 진정으로 케이팝을 사랑했던 너와 나였다.

슬픔의 케이팝 파티 2019 부산

슬픔의 케이팝 파티 2019 리포트
  1. 토크 세션 1일차 by 하루살이, 심댱
  2. 토크 세션 2일차 by 스큅, 마노
  3. DJ 세트 리뷰 by 마노, 스큅, 심댱, 하루살이
  4. 필진 대담: ‘그래서 슬케파 그게 뭔데?!’ by 마노, 스큅, 심댱, 하루살이

리포트 : 슬픔의 케이팝 파티 ② 토크 세션 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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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슬픔의 케이팝 파티〉라는 수상한 제목의 파티가 열렸다. 폭발적인 호응 속에 이어지는 이 기획을 아이돌로지가 들여다 보았다. 지난 5월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열린 〈슬픔의 케이팝 파티〉 현장 리포트. 1부에서 이어진다. 〈슬픔의 케이팝 파티〉는 9월 28일 부산 금사락에서도 개최된다. [예매 링크]
1부 〈Why So Lonely〉

Text by 스큅

5월 12일 일요일 토크 1부 순서로 진행된 〈Why So Lonely〉는 라이벌 구도의 두 케이팝 중 좋아하는 곡을 선택해 더 적은 표를 얻은 쪽이 승리하는 형식의 액티비티 게임으로, 가장 외로운 소수취향을 가진 한 사람이 최종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슬픔의 케이팝 파티〉 이름값을 제대로 보여준 코너. 관전 중 흥미로웠던 대진 결과를 꼽아 소개한다.

핑클 ‘Now’ vs. S.E.S. ‘I’m Your Girl’

첫 문제부터 반칙이다. S.E.S.의 ‘I’m Your Girl’이라니. 아이돌 교본의 초판을 저버리란 말인가. 많은 이들이 불가항력으로 ‘I’m Your Girl’에 이끌렸고, 승리는 결국 ‘Now’가 차지했다. ‘Now’를 찍은 이들에겐 ‘양심 없다’는 농반진반 비아냥이 돌아가기도. 너무하다. ‘Now’가 얼마나 명곡인데요. (하지만 나도 ‘I’m Your Girl’을 골랐다.)

방탄소년단 ‘DNA’ vs. 서태지와 아이들 ‘Come Back Home’

음악 면에서나 메시지 면에서나 파급력 면에서나, 방탄소년단은 동세대 아이돌보다 서태지와 아이들과 곧잘 비교되곤 한다. 따라서 두 곡이 함께 붙은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 승자는 놀랍게도 ‘DNA’가 되었는데, ‘슴덕’이 대다수를 차지했던 관객 비중이 그 이유가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나르샤 ‘삐리빠빠’ vs. 남녀공학 ‘삐리뽐 빼리뽐’

최근 스브스뉴스 〈문명특급〉을 통해 조명된 ‘숨듣명’의 대표주자, ‘삐리-’ 콤보가 맞붙었다. ‘삐리빠빠’가 승리를 가져갔는데, 방구석을 박차고 나와 슬케파까지 행차할 의욕과 흥을 가진 이들이 ‘삐리뽐 빼리뽐’을, 그렇지 않은 이들이 ‘삐리빠빠’를 선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슬픔의 케이팝 파티 2일차 토크 세션

f(x) ‘Hot Summer’ vs. 레드벨벳 ‘빨간 맛’

“이건 진짜 못 고른다”는 MC의 선전포고 뒤에 이어진 세기의 썸머송 간 대결. 중간지대에서 갈 길을 잃고 신음하는 사람들이 속출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결정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치열한 접전 끝에 결과는, 놀랍게도, 무승부.

NCT U ‘일곱 번째 감각’ vs. 몬스타엑스 ‘신속히’

슬케파 공인 뱅어(banger). 트위터 양대 산맥. 재밌게도 결과는 매우 쉽게 매듭지어졌는데, 모두 3초 만에 자신의 확고한 취향 편에 서서 요지부동했기 때문. 다른 때와 달리 중간에서 헤매거나 선택을 바꾸는 이 하나 없어 단단한 결의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승리는 ‘신속히’의 몫. 트위터 아이돌 끝판왕은 역시 NCT인 건지.

이지 ‘응급실’ vs. 버즈 ‘남자를 몰라’

“이건 진짜 못 고른다”가 이런 의미가 될 줄이야. 단체로 질색팔색하는 동시에 입으로는 떼창을 멈추지 못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결과는 ‘남자를 몰라’의 승리. 2인칭으로 ‘이 바보야’ 소리를 듣는 것보다 1인칭으로 언급되는 ‘남자’를 견디기가 더 힘든가 보다. 첫째 날 토크 순서에서 나왔던 말을 되새겨본다. “슬케파에 버즈 금지예요.”

카라 ‘미스터’ vs. 소녀시대 ‘소원을 말해봐’

우리네를 웃고 울게 한 2세대 걸그룹 전성기 대표곡 간의 대결이다. 소원이자 카밀리아였던 이들에게는 고문과도 같은 시간. 그 번뇌가 드러나듯 무승부가 나왔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들을 지지하며, 기다린다.

2NE1 ‘Fire’ vs. 2NE1 ‘내가 제일 잘 나가’

2NE1의 대적자는 2NE1뿐. 현시점까지도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선정된 두 곡은 팀 이름 말마따나 ‘New Evolution’이었던 데뷔곡 ‘Fire’와 커리어하이를 찍었던 ‘내가 제일 잘나가’. 이 역시 무승부다. 연이은 무승부에서 물씬 느껴지는 관객들의 진정성(a.k.a. JJS)이란.

슬픔의 케이팝 파티 2일차 토크 세션

나인뮤지스 ‘Dolls’ vs. 애프터스쿨 ‘Diva’

‘Dolls’가 흘러나온 순간 터져 나온 환호성과 떼창. 게임오버라 생각한 순간 상대 곡으로 ‘Diva’가 등장하며 판세는 뒤집혔다. 두 그룹은 (회사의 방만한 기획에 힘입어) 잦은 멤버 교체를 겪어왔고 청승 섞인 흥을 선보였다는 공통점이 있어 라이벌 구도에 놓일 만한데, ‘슬케팝’의 중추에 놓인 주옥같은 명곡을 남긴 그룹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다니 비통할 따름이다.

소찬휘 ‘Tears’ vs. 김건모 ‘잘못된 만남’

최후의 2인이 남아 두 사람이 1:1로 갈라서면 나머지 관중의 호응으로 승자를 가리기로 했다. 대진곡은 불후의 90년대 댄스가요 ‘Tears’와 ‘잘못된 만남’. ‘잘못된 만남’의 우승이 점쳐진 가운데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Tears’를 여성 생존자가, ‘잘못된 만남’을 남성 생존자가 선택했기 때문. 취향을 따라 ‘Tears’를 선택할 시 남성 생존자가 우승하게 되는 상황. 결국 관객들은 약속이나 한 듯 ‘Tears’를 저버리고 ‘잘못된 만남’에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기를 택했다. 여성이 주도하는 행사에서 여성에게 트로피를 안겨주고자 한, 〈슬픔의 케이팝 파티〉가 어떤 행사인지를 확인시켜준 순간.

슬픔의 케이팝 파티 2일차 토크 세션

2부 〈Play List Contest: 나의 영웅들〉

Text by 마노

5월 11일 토크 2부 〈Play List Contest: 나의 친구들〉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여성들의 플레이리스트를 살펴보는 시간이었다면, 5월 12일 토크 2부 〈Play List Contest: 나의 영웅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 인사들의 플레이리스트를 함께 나누고 들어보는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슬픔의 케이팝 파티’의 기획자이기도 한 복길이 진행을 맡고 뮤지션 김사월과 소설가 정세랑이 게스트로 함께한 자리에서 가수, 아나운서, 프로듀서 등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여성들, ‘영웅들’이 아끼는 케이팝과 그에 얽힌 다소 사적인 이야기를 공유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원더걸스 ‘I Feel You’, 투애니원 ‘Falling in Love’, 미쓰에이 ‘Breathe’, 레드벨벳 ‘Power Up’이 포함된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며 정세랑은 “중요한 일을 앞두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때 듣는 노래들을 골라봤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애티튜드를 빌리는 순간들이 있는데, 빌린 것에 대해서는 갚아야 하므로 늘 편들고 지지하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언제까지나 당신의 편입니다’ 하고 말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며 케이팝, 특히 케이팝 씬의 여성 아티스트들에게 진한 애정을 비쳤다. 김사월은 “어떤 순간에 케이팝에 구원을 받았나 생각해봤다. 내가 굉장히 힘들고 나약해져 있을 때, 그들이 굉장히 강해보이고 나쁜 말을 (대신) 해주고 반짝반짝 멋있으면 거기서 힘을 많이 얻는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이별을 했거나 아프거나 할 때 케이팝을 들으면서 씩씩하게 걸어 나갔던 기억이 있다”고 밝히며 원더걸스 ‘2 Different Tears’, G.Na ‘꺼져줄게 잘 살아’, 2NE1 ‘Hate You’가 포함된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했다. 두 게스트뿐만 아니라 가수 바다, 효린, 프로듀서 최다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여성들이 저마다 공유해준 ‘플레이리스트’와 메시지를 함께 들어보고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각 곡 및 아티스트에 관한 ‘TMI’와 곡에 얽힌 두 게스트의 사적인 비화, 아는 노래가 나오자 반가워하는 관객들의 떼창이 군데군데 곁들여지기도 했다.

슬픔의 케이팝 파티 2일차 토크 세션

엔딩을 맞이하며 정세랑은 “다른 영역에 가보니 자본이 많이 결합하여 있는 업계일수록 아티스트가 자기 마음대로 하기가 어렵더라. 나는 글을 쓸 때 자유로운데, 알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려면 8명과 싸워서 이겨야 하더라. 케이팝 아티스트들 역시 본인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지가 굉장히 적고, 회사 사람들 혹은 다른 사람들과 계속 싸워야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티스트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드러나지 않는 싸움’을 응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향한 지지와 연대의 중요성을 설파하여 공감 어린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늘 편들고 지지하고 응원하는, ‘언제나 당신의 편’이라고 말하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최대의 지지를 보내는 바로 그것이 어쩌면 케이팝 씬에서의 연대의 형태가 아닐까.
곡도 다르고 그 곡에 저마다 품은 감상과 추억도 다르지만, 케이팝으로 인해 힘과 위로를 얻는 것은 그들이나 우리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묘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끝으로 여러 여성 인사들이 사려 깊게 공유해준 플레이리스트를 덧붙여본다.

플레이리스트

가수 바다: S.E.S – ‘친구’

“여성들에게, 나의 친구들에게,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곁에서 늘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이 곡을 선정했습니다.”

가수 효린: 윤미래 – ‘Memories’

“어릴적 부터 자신감을 갖고 싶을 때 듣던 한국 가요입니다. 가사가 들려주는 그 강인함이 자신감과 원동력을 느끼게 합니다.”

프로듀서 최다은: 러블리즈 – ‘종소리’

“뽕기 어린 서정적인 선율이 빠른 리듬을 만나서 걸그룹을 통해 구현될 때 제가 느끼는 애수는 극대화 됩니다. 윤상 키즈였음을 고백하는 것과 별개로 러블리즈는 저의 최애 걸그룹입니다. 이 곡은 다른 사람이 만들었지만요.”

슬픔의 케이팝 파티 2019 부산

슬픔의 케이팝 파티 2019 리포트
  1. 토크 세션 1일차 by 하루살이, 심댱
  2. 토크 세션 2일차 by 스큅, 마노
  3. DJ 세트 리뷰 by 마노, 스큅, 심댱, 하루살이
  4. 필진 대담: ‘그래서 슬케파 그게 뭔데?!’ by 마노, 스큅, 심댱, 하루살이

리포트 : 슬픔의 케이팝 파티 ③ DJ 세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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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슬픔의 케이팝 파티〉라는 수상한 제목의 파티가 열렸다. 폭발적인 호응 속에 이어지는 이 기획을 아이돌로지가 들여다 보았다. 지난 5월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열린 〈슬픔의 케이팝 파티〉에서 있었던 DJ 세트를 리뷰한다. 각 DJ의 사진 아래 아이콘을 클릭하면 해당 세트의 곡목 또는 음원을 확인할 수 있다. 〈슬픔의 케이팝 파티〉는 9월 28일 부산 금사락에서도 개최된다. [예매 링크]

하우스 기반의 현세대 아이돌 그룹 수록곡들을 매끈하게 엮어냈다. DJ 데뷔 무대인 만큼 자신의 취향을 고스란히 녹여낸 결과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슬케파’에서 탄생한 DJ로서,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곡을 틀게 된 설렘이 한껏 느껴지는 세트리스트. 곡과 곡을 잇는 과정에서 화성의 충돌로 교란이 빚어진 부분이 간혹 있었으나 유기적인 흐름 덕에 세트를 즐기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중간중간 포인트 안무를 곁들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다른 DJ들과 다르게 케이팝으로 디제잉을 시작했기에 가능한 연출이 아닐까 싶기도. 레몬튠을 시작으로 앞으로 케이팝에 특화된 DJ와 디제잉을 더욱 많이 볼 수 있으리란 기대를 품어본다.

“차가워 또 짜릿해” 세트리스트 초반에 수록된 ‘Blue Lemonade’ 가사처럼, 탄산음료 같이 톡톡 튀는 달착지근함이 슬케파의 포문을 연다. 파랑을 메인 컬러로 한 듯 청량감이 곳곳에 느껴지는데, 세븐틴 ‘Moonwalker’ 사이사이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달의 소녀 ‘위성’ 등 트랙이 가진 질감과 톤을 믹스매치해 깊고 다양한 파랑을 느낄 수 있다.
텐션이 떨어지지 않는 산뜻한 남자 아이돌팝은 배경이 되고, 여자 아이돌에서의 섬세한 이미지는 메시지가 되어 lemontune의 케이팝을 소개한다. 푸른 빛깔 케이팝과 함께 관객의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은 플레이 중간에 곁들여진 안무. 슬케파에 어울리는 에티튜드로 파티의 분위기를 무르익게 한 그를 더 많은 행사에서 볼 수 있길 바란다.

 

lemontune의 명-수록곡 큐레이팅 뒤에 펼쳐진 것은 Arexibo의 명-활동곡 릴레이였다. 카드 ‘Oh NaNa’, (여자)아이들 ‘Latata’ 등 뭄바톤을 시작으로 일렉트로 하우스 기반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솜씨 좋게 펼쳐 보인다. f(x) ‘라차타’와 루나 ‘Free Somebody’, 아이즈원의 ‘라비앙로즈’와 ‘비올레타’ 등 대구를 이루는 곡들을 연이어 배치해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센스가 일품이다. 세트 말미 이달의소녀 진솔의 ‘Singing In The Rain’을 이용해 퓨처 베이스로 급커브를 도는 순간의 짜릿함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 장르와 BPM을 갈아끼우면서도 임계점을 넘기지 않은 채 적당량의 흥을 지속적으로 유지한 감각적인 세트.

뭄바톤으로 시작해 퓨처R&B로 마무리하기까지 우악스럽지 않게 트렌드를 요약한다. 최근 2년 사이에 발매된 타이틀곡 위주로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흥을 유지한다.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로운 f(x)만이 이 조건에서 벗어나 있다. ‘부탁해’ 전주와 동시에 하얀 조명 효과로 가득 찬 플로어는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그 뒤로 정교한 고뇌를 거친 선곡이 다이내믹하지만 조화롭게 이어진다. 케이팝의 현재가 궁금하다면 Arexibo의 믹스부터 들어보기를 권한다.

 

케이팝 광인에게 ‘현타(현실 자각 타임)’는 숙명과도 같다. 프로덕션 내외의 근본 없는, 괴이한, 때로는 저열하기까지 한 구석을 발견하는 순간, 그럼에도 이에 어쩔 수 없이 반응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환멸에 빠지고 이를 숨기거나 애써 외면하기 바쁘다. 케이팝이 ‘숨듣명’ 내지는 ‘길티 플레저’라 불리는 이유다. 그러나 GCM은 이 구도를 뒤집는다. 케이팝의 ‘플레저’에 꼬리표로 따라붙던 ‘길티’를 대문짝만하게 입간판으로 내거는 것이다. 그의 세트리스트는 나사 하나가 빠진, 혹은 이상하게 덧기워진 곡으로 채워져 있다. 가사도 장르도 무근본 케이-댄스-팝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너 나 알아’를 시작으로 괴랄하게 일그러진 SMP ‘Catch Me’와 ‘Red Light’, 밑도 끝도 없이 “오빠”를 외치는 YG의 ‘붐바야’와 ‘강남스타일’까지. ‘Just Guilty’라는 슬로건을 몸소 실천하는 듯한 매서운 위용을 뽐낸다. 그리고 뒤이은 매시업 ‘Oppa Suregi’에서 ‘강남 스타일’의 “오빠”가 “쓰레기”로 전치되는 순간, 전복의 에너지는 끝끝내 임계점을 넘어선다. 길티‘하지만’ 플레저였던 케이팝은 길티‘하기에’ 플레저인 경지에 도달하고, 길티와 플레저가 역접이 아닌 순접의 관계를 맺으며 피동적인 환멸은 적극적인 능멸로 탈바꿈한다. 이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빠개는’ 수밖에. 브레이크를 잃은 채 내달리는 폭주 기관차는 SMP의 정점 ‘Maxstep’, 공인된 슬픔의 케이팝 파티 뱅어 ‘Hero’, 올 상반기의 진성 케이팝 ‘우와’를 끝으로 장렬히 산화한다. ‘현타’의 고리를 끊은 이 세트를 들은 이상 탈-케이팝은 글렀다.

 

“5월의 퀴어퍼레이드 같았다”는 후기에서 단순 유희를 넘어 정체성 정치의 음악으로 자리 잡은 케이팝을 읽는다. 케이팝은 어떻게 게이 앤썸, 혹은 그보다 일반적인 ‘게이-팝’으로서의 지위를 얻는 걸까. 일전에 “퀴어도 아이돌을 좋아해”(http://idology.kr/4771) 기사에서 다룬 바 있듯 가사와 내러티브의 재해석과 전유를 그 이유로 들 수 있지만, 그보다 훨씬 근본적이고 직관적으로 케이팝에 서린 흥과 한, 뽕과 끼의 과잉이 바로 한국식 ‘캠프(camp)’로 발현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노동요’가 ‘게이-팝’과 위화감 없이 이어지는 것 역시 이 때문 아닐까. ‘숨듣명’을 기믹으로 끄집어낸 ‘노동요’ 역시 캠프의 미학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GCM이 앞서 ‘길티 플레저’의 전복을 이뤄냈다면, 넷갈라는 (한국인의 얼) ‘디나이얼’을 무참히 깨부순다. 웰컴 투 케이팝 무간지옥.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친 뽕끼’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게이-팝〉과 〈노동요〉 두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진행해 넓은 범위의 케이팝을 다뤘다. 넷갈라의 손을 거치면 발라드도, 트로트도 전부 케이팝임에 동의하게 된다. 잠시 숨을 돌리자며 튼 첫 곡 ‘만약에’는 떼창으로 오히려 더 열기를 달궜다. ‘빠빠빠’로 다시 분위기를 바꾸자마자 후렴에 맞춰서 객석 곳곳에서 점프하는 장관이 펼쳐졌다. 〈게이-팝〉에서 MBK의 곡만 세 곡 이상 선곡되었는데 한국인 정서를 관통하는 MBK 감성이란 무엇인가 재고하게 된다. 확실한 것은 토요일엔 넷갈라의 선곡이 가장 슬펐다는 것. 트와이스의 ‘Fancy’를 지나 〈노동요〉로 넘어가면 어느 선 이상 올라간 BPM에 그저 무아지경으로 빠져들게 된다. 디제이의 뒤로 보이는 엘모 화면은 이 집단 최면에 정점을 찍는다.

 

“To the world 여긴 NCT”. 공식 인사와 함께 무대가 시작되고 무수히 많은 믐뭔봄(NCT 응원봉의 별칭)이 흩날린다. NCT가 아닌, J.E.B(요한 일렉트릭 바흐)의 이야기다. NCT 매시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던 그는 기대에 부응하듯 NCT 노래를 다수 선곡했고 관객은 열띤 호응으로 응답했다. NCT 127 버전의 ‘초련’까지 샘플링한 그의 진정성에 탄식을 금치 못했으며, ‘생율 Bomb’과 ‘옹헤야 Says’가 나올 때는 원곡이 아닌 매시업을 떼창해버리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NCT의 후광 덕이라 보아서는 곤란하다. NCT 매시업은 표상일 뿐, 그 너머에는 인터넷 밈(meme) 세대의 음악이라 평가/칭송받는 그의 음악이 자리한다. 케이팝 팬덤이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활발하고 적극적인 인터넷 밈의 수용자이자 생산자이기에, 슬픔의 케이팝 파티는 그에게 홈그라운드와 다름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흡사 사이비 종교 집회 같았다는 농담은 강력한 밈의 설파자와 그의 열렬한 추종자(follower)가 웹에서 현실 공간으로 옮겨온 장면을 꽤나 정확히 포착한 셈이다. 그렇다면 J.E.B의 밈이 독보적인 전염성을 가지는 이유는 무얼까. 이를 구차하게 열거하는 것은 밈의 효력을 약화시킬 뿐이므로 여기서는 그의 뛰어난 봉합력만을 언급하고 싶다. 개별 매시업에서도 빛을 발했던 봉합력은 세트 전체에 걸쳐 나타난다. 1시간의 플레이 시간동안 제대로 된 BPM 스위치는 단 한 번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 긴 시간을 착실하게 ‘빠갤’ 수 있었던 것은 예측불허한 다채로운 배치 덕이었다. 초반 40여 분 간은 하프 타임과 더블 타임을 오가며 롤러코스터와도 같은 구성을 보였다면, BPM 스위치 이후로는 비트가 포온더플로어 하우스로 안정화되어 체감 BPM이 더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최초공개하는 ‘뱅어’들을 난사하며 텐션을 증폭시키고야 만다. 몽환적인 트랩을 때깔 좋은 하우스로 완벽히 탈바꿈한 ‘일곱 번째 Satisfaction’과 원곡의 하이퍼-에너지를 맥시멈으로 구현해낸 ‘Booyahappiness’의 황홀경을 부디 놓치지 말기를.

서늘하고 느긋한 로우템포 튠으로 시작해 청량하고 산뜻한 미드템포 튠으로 마무리 되는, 초여름이라는 행사의 시간적 배경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세트다. 텐션과 온도를 성급하게 올리지 않고 적절히 안배하는 동시에 들쭉날쭉해지는 일 없이 일정히 가져가고 있어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으로 손색이 없다. 게다가 첫 곡이며 가장 느린 곡이 73 BPM(엑소 ‘Ko Ko Bop’), 마지막 곡이며 가장 빠른 곡이 115 BPM(월하소년 ‘I Know You Know’)로 편차가 꽤 큰 편인데도 처음부터 무작정 달리기보다는 신중히 천천히 달구어가며, 마치 처음부터 한 곡인 양 퍼즐처럼 꼭 맞아떨어지도록 구간과 구간을 정밀히 엮어나간다. 한편 작곡 전공 출신의 트랙 메이커이기도 한 그의 능력이 몇몇 리믹스 트랙(세븐틴 ‘울고 싶지 않아’, JBJ95 ‘Home’, 서연 ‘여름 안에서’)에서 빛나기도 하는데, 그러고 보면 세트의 전체적인 인상이 곡과 곡을 이어 하나의 커다란(?) 트랙으로 만든 듯하기도. 백미는 ‘울고 싶지 않아’-‘Underwater’-‘Rumor’-‘나침반’-‘오솔레미오’-‘한’으로 이어지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서늘한 신스-뭄바톤-라틴팝 구간. 이어서 직접 리믹스한 ‘Home’에서부터 분위기를 일신하여 조금 온도가 올라간 듯한 시원함을 변주해낸다. 녹음된 믹셋 역시 까슬거림 없이 매끈한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어 일상의 BGM으로 함께하기 좋으므로 일청을 권한다.’

디제잉이 끝나고 세트리스트를 되짚어보며 치밀한 구성에 감탄한다. ‘예뻐지지 마’와 ‘Bad Boy’ 사이 ‘I Am’이 없었다면. ‘Rumor’와 ‘오솔레미오’ 사이 ‘나침반’이 없었다면. 한 곡이라도 빠졌다면 흐름이 어그러졌을, 모든 곡이 꽉 맞물린 세트리스트다. 곡 배치 안목은 물론 자연스러운 BPM 증가, 사운드 소스 융화와 조성 변화까지 신경쓴 세심한 전환부, 적재적소에서 제 몫을 다하는 리믹스 트랙 등 단단한 세공력 역시 돋보인다. 데뷔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디제잉을 선보여 향후를 더욱 기대하게 된다.


‘숨듣명’이 아닌 ‘슬케팝’. 준수한 완성도를 지녔지만 화제성이 떨어져 빛을 발하지 못한 곡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끊임없이 샤잠(Shazam)을 돌린 사람이 분명 적지 않았을 것. 일반 클럽 혹은 라운지 펍에서 틀어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세련되었다. 특히 레드벨벳 ‘Kingdom Come’, 레이디스코드 ‘Galaxy’, CLC ‘Breakdown’이 이어지는 부분은 순전한 ‘슬픔’, 애수의 케이팝을 경험케 하는 이례적인 구간. BPM을 소수 단위로 매만지는 듯한 섬세한 조작과 동명의 타이틀곡을 잇는 센스 역시 돋보이며, 화려한 턴테이블 조작과 라이브 무대매너는 디제잉에 재미를 더한다. 양일 10개의 플레이리스트를 통틀어 가장 이질적인 세트를 선보였는데, “케이팝의 해석이 다르다기보다는 내가 그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여러 가지로 플레이하고 있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는 그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숨듣명’에 매몰되어버린 지옥의 케이팝러에게 내리는 동아줄처럼 느껴진다 하면 과언일까.


최첨단 가상 아이돌부터 90년대 댄스 가요까지, 밀레니얼 ‘국힙’부터 2019년 신인 아이돌까지, 신세대 SMP부터 윤상과 스윗튠까지. 케이팝의 바운더리 내에서 시대와 장르를 종횡무진한다. 가장 넓은 폭의 음악을 다루며 베리베리 ‘딱 잘라서 말해’를 영턱스클럽 ‘훔쳐보기’와 잇고 한요한 ‘댄스’를 알로 ‘잠자는 숲속의 왕자’와 잇는 등 꽤나 과감한 코너링을 시도하지만, 일관되게 나타나는 레트로의 향수로 균형감각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레트로의 향수가 짙게 묻어난 노래는 대개 사장된 명곡이었다는 점도 재미있다. 레트로 마니아의 ‘이 노래 왜 안 떠요?’ 특집 같았달까. DJ의 섬세한 촉을 엿볼 수 있는 선곡이었다. 디제잉과 별개의 이야기지만 ‘국힙’ 트랙에 대한 관객들의 일차원적인 거부반응에 ‘(슬픔의) 케이팝’이란 과연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케이팝-아이돌팝은 ‘국힙’의 안티 체제인 걸까.


21세기에도 불건전가요가 있다면 바로 이 곡들일 것이다. 일반 ‘숨듣명’이 방구석 클럽튠이라면, 이 ‘숨듣명’의 스케일은 이불 속. 사실 ‘노동요’의 기믹으로 끌어 올려진 작금의 ‘숨듣명’은 우악스러운, 소위 ‘빠개는’ 댄스튠만을 포착하고, 음침하지만 유려한 선율과 가락을 지닌 ‘슬케팝’을 간과하는 측면이 있었다. 만나는 이러한 곡들까지 착실하게 챙기며 폭넓은 ‘슬픔의 케이팝’을 들려준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세트리스트를 듣고 있노라면 이불 속에 들어가 몸을 들썩이며 눈물을 떨구고만 싶어진다. 관객들 역시 이전까지 떼창을 비롯한 단체 호응이 두드러졌던 것과는 달리 각자 사색의 담요를 두른 채 무아지경에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음악 면에서나 ‘구오빠’들을 향한 일갈을 담은 메시지 면에서나 ‘슬픔’과 ‘케이팝’ 두 가지 축을 가장 고르게 녹여낸, 케이팝의 음습한 희로애락과 이를 향한 자조가 짙게 밴 세트.

울먹이는 여자의 외침 사이로 삐죽이는 인피니트 ‘태풍’의 인트로, 그리고 스크린에 띄워진 “SAD AND BAD.” 인상적인 인트로와 함께 등장한 manna는 케이팝과 댄스 가요를 아우르며 지나간 오빠들을 향해 일갈한다. ‘구 최애마냥 못났고 나빴던 그 오빠, 하지만 참 사랑했지…☆’ 같은 소회는 잠시. 적적함과 슬픔을 잊어보려 시작한 지옥의 케이팝 플레이는 오빠를 향한 미움과 한데 얽혀 혼돈의 카오스로 승화된다. 이 혼돈의 카오스는 댄스 가요와 케이팝 사이(ex. 스페이스 에이 ‘성숙’, 모모랜드 ‘Baam’), 나이트와 클럽 사이를(ex.거북이 ‘Come On’, 씨스타 ‘So Cool’) 누비며 어느새 순수한 흥으로 진화한다. 미움과 슬픔, 그리고 혼돈의 감정은 ‘나쁜 기집애’가 되겠다는 독한 마음으로 갈무리를 맺는다. 슬픈 ‘땐스곡’으로 대동 단결된 세트리스트는 기승전결이 뚜렷해 마치 막장드라마와 같은 강렬한 자극을 주었다. manna의 시간은 관객의 K-DNA를 고루 건드리며 슬케파의 분위기를 한층 더 얼큰히 달아오르게 했다.


제목을 붙이자면 ‘당신이 슬케파에 바랐던 모든 것’. 관중의 취향을 저격하고 말겠다는 사명감마저 느껴진다. 여기서 말하는 관중의 취향은 2세대 아이돌 붐을 전후로 음악 취향 형성의 결정적 시기를 보낸 90년대생 여성, 이른바 ‘뮤직뱅크 세대’를 중심으로 편재되어있다. 이에 따라 세트리스트는 SMP와 SMP 특유의 터무니없음을 공유하는 곡들로 채워졌는데, 흡사 “300X2”를 방불케 하는 열렬한 떼창을 듣고 있자니 이쯤 하면 SMP를 X세대 이후, Y세대와 Z세대(밀레니얼 세대) 사이 과도기적 세대의 분열증적 시대정신이라 해야 하지 않나 싶다. 격변하는 현실과 끊임없이 불화하는 ‘어둠의 케이팝’ 퍼레이드는 마지막 순간 동 세대 ‘빛의 가요’ 히트곡, ‘비밀번호 486’을 만나며 극적인 화합을 이뤄낸다. 이틀간의 살풀이를 마무리하고 ‘현생’으로 복귀해야 하는 시점 최적의 선곡. 슬픔의 케이팝 파티를 관통하며 마지막 획을 그은 완벽한 구성이었다. 성범죄 연루 전적이 있는 멤버가 소속된 그룹의 곡을 제외한다는 내부 방침을 미처 지키지 못했다는 점만이 옥에 티.


슬픔의 케이팝 파티 2019 부산

슬픔의 케이팝 파티 2019 리포트
  1. 토크 세션 1일차 by 하루살이, 심댱
  2. 토크 세션 2일차 by 스큅, 마노
  3. DJ 세트 리뷰 by 마노, 스큅, 심댱, 하루살이
  4. 필진 대담: ‘그래서 슬케파 그게 뭔데?!’ by 마노, 스큅, 심댱, 하루살이

오마이걸 –‘다섯 번째 계절 (SSFWL)’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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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스티븐 리, 그리고 작사가 서지음과 함께 작업한 세 번째 작품이다. 두 번째 작품 ‘불꽃놀이’가 첫 작품 ‘비밀정원’ 중 ‘추억의 공유’라는 주제를 빌어온 노래였다면, 세 번째인 ‘다섯 번째 계절 (SSFWL)’은 ‘비밀정원’의 동화적인 색채를 판타지 세계관으로 확장했다.

SNS에서는 이 곡이 2000년대 초반에 방영된 애니메이션 〈이누야샤〉의 엔딩곡을 연상시킨다는 의견이 많았다. 여기에는 작곡가의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스티븐 리는 SS501로 케이팝에 입문하기 전까지 제이팝 씬에서 활동한 작곡가로, 지금도 쟈니스계 등 유명 아이돌에 곡 제공을 하고 있어 일본 가요에 이해가 깊다. ‘다섯 번째 계절’에 많이 쓰인 코드 진행 IV – V7 – iii – vi 은 일본 대중 가요에서 특히 인기 있는 패턴이다. 노래의 정중앙에 위치한 “사랑이면 단번에 바로 알 수가 있대” 라인이 정확히 이 진행이다. 여기에 마이너 펜타토닉 음계로 오르내리며 전체적으로 하강하는 멜로디를 붙이면 우리가 아는 ‘동양풍’ 느낌이 된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곡이라면 류이치 사카모토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가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B마이너 곡조이나, 군데군데 B마이너 코드의 자리에 B메이저 코드를 넣어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예를 들면 전주의 끝부분이나(Em – F#m – B), 유아가 부르는 A 섹션의 “쌓여가, 또 쌓여가”(Bm – B), “난 달라진 것만 같애”(Bm – B), “그 사람이 누군지”(Em – F#m – B),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꾸는 꿈”(Em – F#m – G – A – B) 등등. 1절에서만 나열해도 이만큼이니 곡 전반에 걸쳐 쓰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누야샤〉 엔딩곡으로 쓰였던 곡들 중 비교한다면, 하마사키 아유미의 ‘Dearest’와 Day After Tomorrow의 ‘イタズラなKISS’(장난스러운 키스)가 IV – V7 – iii – VI(마이너를 메이저로 바꿈) 코드 진행을 이용한다. 이렇게 마이너의 기본 토닉 코드를 메이저로 살짝 바꿔주면, 예상치 못한 전개에서 신비감이나 모험의 설렘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클래식에서는 이를 피카르디 3도(Picardy 3rd)라고 부른다. 바로크 시대부터 있었던 아주 오래된 종지 형태로, 바흐의 평균율 푸가 등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 패턴을 특히 많이 이용한 작품으로는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가 있다. 20세기 말에 발매되어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게임이라, 이 게임의 음악도 이런 판타지 배경의 모험가를 위한 음악의 대표격으로 인식되는 듯하다.

기획은 이런 음악에 ‘유러피안’ 비주얼을 매치해 지나치게 노골적인 일본 아니메풍 느낌을 피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티저로 공개된 이미지에서는 멤버들이 드가의 발레리나 시리즈처럼 머리를 올려 묶고 긴 로맨틱 튜튜를 입어 전작 중 ‘Closer’ 같은 노래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게 하기도 했다. 무대 의상에도 이 스타일이 다수 반영되었다. 아니메 느낌만을 의도했다면 이전에 입은 적 있는 미니 테니스 스커트를 입을 수도 있었겠지만, 무릎 길이의 의상을 입은 덕분에 무대에서 춤추는 모습도 한결 편해 보이고, 안정적이다.

뮤직비디오에서는 CG로 판타지의 느낌을 더욱 강조했다. 첫 장면은 오로라가 지는 하늘 아래 눈 덮인 산에 홀로 서있는 비니의 모습이다. 〈겨울왕국〉의 엘사가 눈보라 속에서 자유를 찾는다면 비니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이와 달리 춥고 외로워 보인다. 노을지는 시간에 전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지호와 유채꽃밭에 서서 미소 짓는 아린을 지나면서 희망적인 정서가 더해지며, 후렴 전반부에 도달해서는 “사랑이면 단번에 바로 알 수가 있대 / 헷갈리지 않고 반드시 알아볼 수가 있대” 하는 맹목적 운명론이 펼쳐진다. 이는 작곡진은 다르나 소속사가 같은 온앤오프가 근작 ‘사랑하게 될 거야’에서 선보인 정서와 비슷하다. 판타지적 시공간 속에서 화자가 상대방에게 ‘너와 나는 사랑할 운명’이라 말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이 메시지는 “(이제 난 그 사람이 누군지) / 확신했어” 하며 코러스 후반으로 한번 더 도약해 치닫는다. “확신했어”라는 가사와 손을 하늘로 힘차게 뻗는 안무는 딕션과 톤이 또렷한 효정의 보컬을 만나 그 메시지가 극대화 되고, 뒤이어 돌입하는 코러스 후반에 뮤직비디오는 이제껏 화면에 등장한 적 없는 활짝 열린 푸른 하늘을 보여주며 공감각을 확장해낸다. 이 때 음악도 한 마디에 네 박씩 들어가던 킥드럼이 두 배인 여덟 박으로 쪼개지며 마치 박차를 가한 듯한 효과를 낸다. 무심코 들으면 BPM이 빨라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비밀정원’부터 이어진 적극적인 신스 스트링 사용은 오마이걸에게 아니메 사운드라는 옷을 입혀주었지만, 리듬은 계속해서 EDM 유행을 따르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포인트다. 잘게 쪼개 빠르게 찍은 하이햇 등은 누가 봐도 EDM의 영향이며, 이는 얼마나 어울리느냐 여부와 관계없이 이 곡을 ‘케이팝’의 바운더리 안에 머무르게 한다. 상기한 코러스 후반의 리듬 변화 등을 보면, ‘비밀정원’ 때보다 이 리듬을 튠에 어떻게 매치할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고 나름의 발전도 이뤄낸 것을 확인한다.

그러나 다시 돌아와, 이 곡은 일본 서브컬처의 레퍼런스를 제법 노골적일 정도로 곡 전반에 걸쳐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는 그것이 친숙해서 좋을 테지만, 누군가는 이제까지 ‘Closer’나 ‘Liar Liar’ 등을 통해 다뤄온 기민한(alert) 사운드나 남다르게 섬세했던 앰비언트 정서가 일본 아니메 정서에 포섭되어 오마이걸이 꽤 분명한 ‘국적성’을 갖게 되어 아쉽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이미 케이팝 걸그룹 중에는 이 요소를 적극 차용하는 팀이 많다. 현재의 케이팝 씬에서 일본 서브컬처 요소란 콘텐츠에 충분히 몰두해주는 충성도 높은 팬덤을 다지기 위한, 일종의 성공 카드 중 하나이다. 그러나 오마이걸의 기획은 레거시가 길지 않은 중소기획사임에도 음악적 세련이라는 길을 타협하지 않고 걸어온 바, 이번 변화가 다소 아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는 세련에서 탈선하기는 했으나 대중성을 위한 타협의 영역은 아니었으므로 논외로 하자.) 허나 이 곡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여러 번 수상의 영예를 안은만큼, 오마이걸의 커리어에 중요한 곡으로 남을 것만은 분명하다.

‘다섯 번째 계절 (SSFWL)’은 일본어 싱글로 발매되기도 했다. 한국어 가사도 훌륭했지만, 이 곡에는 일본어 노랫말이 특히 찰떡같이 붙으니 꼭 한번 감상해 보길 권한다.

오마이걸
THE FIFTH SEASON
WM 엔터테인먼트
2019년 5월 8일

   


리포트 : 슬픔의 케이팝 파티 ④ 필진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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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슬픔의 케이팝 파티〉라는 수상한 제목의 파티가 열렸다. 폭발적인 호응 속에 이어지는 이 기획을 아이돌로지가 들여다 보았다. 지난 5월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열린 〈슬픔의 케이팝 파티〉 참석 이후, 아이돌로지 필진 마노, 스큅, 심댱, 하루살이가 모여 이 행사의 인상적인 대목들과 의의를 짚어 보았다.

마노: 우선은 다들 수고 많으셨다.

스큅: 장렬히 빠개지다 왔다. 월요일 아침에 침대 밖으로 발 딛는 순간 종아리 아파서 주저앉았다.

마노: 진심 죽다 살아났다. (웃음)

‘그래서 슬케파 그게 뭔데?!’

마노: 우선은 각자 느낀 점을 자유롭게 이야기해보면 좋겠다. 스큅은 ⟨슬픔의 케이팝 파티⟩(이하 ‘슬케파’)라는 이벤트가 처음이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소감이 어땠나.

스큅: 케이팝애티튜드에서 주최한 ⟨아이돌 케이팝 디제이 선수권 대회⟩(이하 ‘아디대’)라는 비교적 소규모의 케이팝 파티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아시는대로 슬케파는 처음이다. 뭐랄까, 슬케파가 좀 더 ‘찐’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여서인지 관객들도 정말 이를 갈고 온 듯한 느낌이 있었고,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전의 슬케파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마노: 비장미가 엄청 느껴지긴 했다. (웃음) 나는 1, 2회 전부 참전했었는데, 당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스큅: 확실히 현대카드가 주최를 맡으면서 판이 커진 듯 하다. 단순 장소 확대를 넘어서.

마노: 둘 다 장소도 그렇고 상대적으로 소규모였던 데다, 약간 다들 ‘즐파티~’ 하는 분위기였던 거 같긴 하다. 2회는 1회와는 또 조금 다른 분위기였지만. 아마 주최 측도 이렇게 판이 커질 줄은 몰랐을 거라고 본다. 처음에는 계정 이름이 ‘슬케파’니까 ‘그럼 진짜로 파티를 열고 도시전설로 남겨보자’ 정도였을 텐데. 1, 2회를 놓치고서 ‘그래서 슬케파 그게 대체 뭔데~!’ 하며 모인 관객들의 기대치가 집중되었다는 느낌도 들었다.

심댱: 2회 때 참석했었는데 확실히 느낌이 다르긴 했다.

마노: 1, 2회 베뉴는 모두 홍대에 위치한 ‘명월관’이라는 클럽이었고, 여기가 많아야 200명 안팎으로 수용 가능하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게 갑자기 4~500명 수용 가능한 규모가 되어버린 거다. 거기에 현대카드라는 자본까지.

스큅: 이번 슬케파가 이전의 슬케파와 달랐던 점은 커진 판과 커진 기대치로 인한 기대 이상의 폭발적인 반응과 화력인 셈인가.

마노: 그런 셈이다. 그런데 그 폭발적인 반응의 반작용이랄까, 부작용도 상당히 있었다고 본다. 이건 조금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스큅: 나도 그 부분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많다.

마노: 하루살이도 이번 슬케파가 처음이었나.

하루살이: 아예 케이팝 파티가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댄스팝과는 거리감이 좀 있다보니.

마노: 그러다가 어떻게 슬케파를 가고 싶다고 생각하셨는지 궁금하다.

하루살이: 일단 트위터에서 화제였던 게 크다. ‘그래서 그게 뭔데?!’ 싶은. (웃음)

스큅: “아 그래서 대체 뭔데~?” 해서 오신 분이 바로 여기 있었네.

마노: 뭐랄까, ‘슬케파 하는 날=트위터 대명절’ 같은 느낌이긴 하다.

스큅: 정말로 대명절이었던 게 전국 각지에서 오셨더라. 슬케파 하나 참전하려고.

슬픔의 케이팝 파티

심댱: 디제이인 넷갈라는 ‘5월의 퀴퍼(퀴어퍼레이드)’ 같다고 하기도 했다.

마노: 실제로 참가해보니까 어땠나.

하루살이: 일단 확실히 재미는 있었다. 다 같이 소란하게 즐기는 분위기에 흥이 안 나긴 어렵지 않나. SMP를 이렇게 즐겨본 것도 거의 처음이었고. 전혀 모르는 곡도 분위기에 휩쓸려 즐길 수 있다고 할까. 중간중간 체력이 달려서 집중력이 좀 흐트러지기도 했지만. (웃음)

스큅: 5시간 스탠딩 공연이 보통 일은 아니다.

마노: 그것도 가만 서서 보는 것도 아니고.

스큅: 그런데도 다들 거의 사명감을 가지고 즐기시더라. ‘가면 오지 않는다!’는 일념 하에.

마노: 슬케파의 모토가 ‘갔어 오지 않아’기도 하고. 그래서 1회도 ‘갔어 오지 않아’를 표방했었는데, 그것이 번복 되고, 또 번복 되고…

하루살이: 그것이 바로 케이팝 아니겠나. (웃음)

광장으로 나온 ‘숨듣명’

마노: 현대카드와 손을 잡고 개최한다는 사실이 발표되고 직후에 좋은 쪽으로나 나쁜 쪽으로나 말이 많았던 거로 안다. 1일 차 토크 세션 진행과 더불어 2일 차 디제잉을 맡기도 한 음악기획자 조한나(manna)도 말했지만 이런 류의 ‘케이팝을 집단으로 광장에서 즐기는 문화’에 대한 갈증과 수요를 현대카드가 영리하게 읽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스큅: 맞다. 각종 케이팝에 ‘숨듣명’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분명 다들 듣는 명곡인데 왠지 숨어서 들어야 할 것 같은 그런 곡들을 까놓고 광장에서 즐기는 자리라니.

심댱: 대체 누가 ‘초특가 야놀자’를 다 함께 부르는 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 싶다.

마노: (폭소) 요한 일렉트릭 바흐(J.E.B, 이하 ‘요일바’)의 매시업 트랙 ‘생율 Bomb’을 다 같이 떼창하는 모먼트도 있었다.

하루살이: ‘썬연료’도 센세이셔널했다.

스큅: 사실 외국은 오히려 이런 자리가 훨씬 많지 않나. 랜덤플레이 댄스 행사도 꽤나 자주 열리고, 일본도 이런 파티가 몇 개씩이나 된다고 들었고.

마노: 맞다. 개인적으로 도쿄에서 개최되는 케이팝 파티 ‘Todak Todakk’에 다녀온 적도 있다.

스큅: 이번에 슬케파에서 디제잉을 한 에리카(e_e_li_c_a)가 주최하는 파티로 알고 있다.

심댱: 랜덤 플레이 댄스가 무엇인지 설명을 부탁드린다.

스큅: 쉽게 말해 ⟨주간 아이돌⟩의 랜덤 플레이 댄스 코너를 차용한 게릴라성 이벤트다. 케이콘에서 개최하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세계 각지 케이팝 팬들이 자발적으로 랜덤 플레이 댄스 행사를 열고 있다. 한국에는 최근에야 유튜버 ‘고퇴경’을 필두로 하여 랜덤 플레이 이벤트가 역수입된 상황이고.

마노: 아이러니하게도 해외가 이런 ‘광장에서 즐기는 케이팝 문화’가 잘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케이팝 댄스 퍼블릭 챌린지’라든가.

스큅: 한동안 랜덤 플레이 댄스 영상을 찾아보면서, ‘저런 게 왜 정작 한국에서는 안 열리지?’라는 의문을 품었었다.

마노: 한국은 길거리 어느 곳에서도 케이팝을 들을 수 있는 반면, 이렇게 ‘다 같이 즐기는’ 문화에는 좀 인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숨듣명’ 같은 말이 다 나오는 거고. 몰래 숨어서 듣다가 (천상지희 그레이스-다나&선데이의) ‘나 좀 봐줘’ 같은 노래를 다 같이 떼창할 수 있는 이벤트가 있다고 하니 득달같이 달려가는 걸 거고. (웃음)

스큅: (웃음) ‘나 좀 봐줘’는 길거리 매장에서도 차마 틀지 못할 곡이니까.

심댱: 한국에서의 케이팝은 아티스트가 중심이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이니 ‘글로벌 슈퍼스타’ 같은. 팬덤에 주목할 수 있는 행사는 이전에도 있었겠지만, 가시화가 된 첫 번째 케이스가 슬케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마노: 슬케파가 케이팝 파티의 최초는 아니지만, 최초의 성공적인 사례인 것은 사실이다.

스큅: 일전에 엑소 팬덤에서도 비슷한 성격의 파티를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게 특정 아티스트 팬덤을 벗어나 범-케이팝으로 확산된, 이 정도 규모의 행사는 분명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노: ‘케이팝애티튜드’의 케이팝 파티나 아이돌로지의 ‘카라 나잇’ 등도 있긴 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규모가 크면서 성공적이었던 케이팝 행사는 아마 없었지 않나 싶다. 둘 다 비교적 소규모였으니까. 그러고 보니 나는 둘 다 참석했다. (웃음)

스큅: 보통 ‘고인물’이 아니다. (웃음)

마노: 생각해보니 ‘빠순이’는 바꿔 말하면 케이팝 시장의 소비자들인데, 그 소비자들을 너무 후려쳐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스큅: 동의한다. 이런 노래들이 ‘숨듣명’이 된 데에는 ‘빠순이’에 대한 낙인의 영향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마노: 요즘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어디 가서 케이팝 듣는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니까.

하루살이: 김윤하와 조한나의 11일 토크 1부의 내용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아이돌팝이 대중음악을 흐려놓는다’는 인식. (웃음)

스큅: 90년대부터 끊이지 않는다던 그 얘기. (웃음)

마노: ‘가요계를 더럽힌 댄스 음악’. (웃음)

스큅: 9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댄스팝의 역사를 빠르게 훑는 기획이었는데, 90년대부터 그러한 수사가 나왔다는 걸 보면 ‘케이팝’이란 용어가 있기 전부터도 댄스팝에 대한 낙인이 강력하게 작용해왔고, 그게 현재의 ‘숨듣명’이라는 말로 이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90년대의 댄스가요 같은 경우 ‘토토가’를 필두로 양지에 끌어올려졌는데, 기성세대가 아닌 현세대의 케이팝은 여전히 ‘숨듣명’의 자리에 남아있고.

마노: 케이팝이 클럽에서 울려퍼지기 시작한 것도 생각 외로 얼마 안 되었다고 알고 있다. 일전에 조한나가 멜론에 기고한 기획 기사(“케이팝 in the 클럽”)를 읽고 알게 된 사실이다. 사실 한국이 클럽 문화에 있어서는 뭐랄까, 정말 납작하고 나쁘게 얘기하자면 ‘후진국’이라고 생각한다. 클럽은 사실 음악 듣고 춤추러 가는 곳인데 특히 한국에서는 ‘수작질’ 하는 곳으로 전락해버린 지 너무 오래지 않나. 작금의 ‘버닝썬 게이트’로 오면 심지어 클럽이 알고 보니 온갖 성범죄의 온상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어버리기도 했고. 나만 해도 홍대 클럽에서 가끔 케이팝 나오는 맛에 친구들이랑 같이 가곤 했었는데, 몇 번 불쾌한 일을 겪고 나니 안 가게 되더라. 슬케파 직후 게재된 경향신문의 리포트에도 있었던 말이고 다들 하는 이야기지만, 역시 가장 큰 것은 ‘안전하게 케이팝을 즐길 수 있는 클럽 문화’에 대한 갈증이 다들 있었다는 것이고, 그것을 슬케파가 적절히 파고들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스큅: 동감한다. 최근 들어 클럽에서도 케이팝을 흔하게 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클린하게’, ‘안전하게’ 케이팝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은 정말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방구석에서만 듣게 되는 거지.

심댱: 덕후에게는 안방 아니면 콘서트인 거다. 물론 아티스트가 없으면 방구석이지만. 아티스트 없이도 즐길 수 있다는 부분이 슬케파의 가장 조명할 만한 부분이라고 해야 할까.

마노: 분명 다 같이 모여서 소리도 지르고 떼창도 하고 해야만 해소되는 무언가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게 자꾸만 팬들을 슬케파에 모이게 한다고 생각하고.

스큅: 케이팝을 즐기는 제3의 길!

마노: ‘숨듣명을 숨어서 듣지 않아도 된다! 나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느슨한 연대 의식도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스큅: 본래 케이팝 씬이 ‘덕질’이라는 양태로, 다소 수동적인 포맷으로밖에 향유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케이팝을 능동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길이 뚫린 느낌이다.

마노: 그렇다. ‘원웨이티켓’이 아니게 된 거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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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P가 남기고 간 것들’

스큅: 김윤하와 조한나의 대담으로 돌아오자면, ‘SMP가 남기고 간 것들’이라는 슬라이드가 있지 않았나. 나 같은 경우 ‘숨듣명’, 슬케팝의 코어에 SMP가 자리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노: 완전히 동감한다. (웃음) 그래서 일요일 헤드라이너였던 m3iji의 세트에 반응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스큅: ‘슴덕’이 아니더라도, SMP 특유의 터무니없고 뻔뻔하고 비장한 혼종적 성격이 케이팝의, ‘숨듣명’의 중추에 자리해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외부로부터의 낙인도 있었지만 우리 스스로도 이게 얼마나 터무니없이 괴상한 혼종인지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알아서 숨어서 듣고 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가장 대표적인 곡이 ‘나 좀 봐줘’.

마노: 아니나 다를까 사전에 공개된 m3iji의 대표곡 중 하나가 ‘나 좀 봐줘’ 였다.

“내가 그들에게 빚진 만큼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

심댱: SM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팬이 바로 케이팝의 원동력이자 유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노: 케이팝도 산업이니까. 소비자 없이는 절대 굴러갈 수 없다. 그러한 면에서 2일 차 1부 토크 세션에서 있었던 정세랑 작가 말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고 싶다. 요는 여러분이 아티스트 편에 있어주어야 이 산업이 바뀔 수 있고 아티스트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산업의 원동력으로서 소비자들이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지를 가장 잘 역설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하고.

스큅: ‘내가 그들에게 빚진 만큼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말도 했다.

마노: 그 말 정말 좋았다. 나도 항상 하는 생각이라서.

스큅: 자본과 많이 결합한 산업일수록 아티스트가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가 정말 어렵다는 걸 최근 들어 절감한다는 요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케이팝 씬 가운데서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는 아티스트들을 지지하고 그들의 편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마노: 그래서인지 요즘 케이팝 시장이 조금씩이지만 변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 뿌듯하고 뭉클해지는 것 같다. 슬케파 역시 그런 변화의 한 부분이자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의견 표출의 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고. 온라인 반응 중에 ‘음악 틀어주는 시위 현장 같다’는 말도 있었다. (웃음)

스큅: (웃음) 종교 집회 같다는 말도 있었고.

심댱: 부흥회이긴 하지.

마노: ‘5월의 퀴퍼’, 케이팝 부흥회, 케이팝 궐기대회… (웃음)

하루살이: 그러고 보니 ‘5월의 퀴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 ‘케이팝이 퀴어 친화적인 장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퀴어가 케이팝 친화적인 건가.

마노: 아이돌로지에도 관련 기사가 있고, 작년에 퀴어 축제를 가서 봤을 때도 케이팝에 대한 반응이 뜨겁긴 했으니 퀴어가 케이팝 친화적인 쪽이 맞긴 할 거 같다.

하루살이: 토크 때 ‘케이팝은 개방이다’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부분도 연결되는 것 같다.

스큅: 맞다. 케이팝만큼 수용적인 음악 씬도 없다고 했던 거로 기억한다. 실제로 해외에서 케이팝을 이야기할 때에도 혼종성을 중요한 특성으로 언급하기도 하고.

클럽 문화와 팬덤 문화의 충돌

스큅: 이쯤 해서 이번 슬케파에 아쉬웠던 점 내지는 한계점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우선 (특히 2일 차에) 조금 얘기가 많지 않았나. 관객들의 ‘사명감’이 사실 범-케이팝의 향유를 향했던 건 아니었다. 지독하고 본질적인 질문이지만, 계속해서 들었던 질문이 ‘(슬픔의) 케이팝’이란 뭘까? 였다. 관객들이 기대했던 슬케팝과 주최 측에서 준비한 슬케팝 사이 묘한 온도차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고.

마노: 못되게 얘기하자면 ‘관객들이 기대했던 슬케팝=본인이 듣고 싶은 슬케팝’이라고 생각한다.

스큅: 동감한다. 그것은 대개 본인의 본진 그룹과 연관되어 있었고.

마노: 검색해보니 많이 얘기하는 게 ‘○○가 안 나오다니 진짜 슬케파네’라고 하는 거였다. 사실 어느 날은 나왔고 다른 날은 안 나왔을 뿐인 경우도 있었는데. (쓴웃음)

스큅: 물론 그러한 바람 자체는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하지만, 조금 가혹할 정도로 의사표출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마노: 아는 노래 나오면 신나고 모르는 노래 나오면 낯선 거야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일부 관객들 반응은 좀 닫혀있었다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긴 한다.

스큅: 특히 주석, 기리보이, 김하온 등 힙합 아티스트들의 곡들이 나왔을 때 반응이 상당히 싸늘했었다. ‘슬케파 맞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마노: 싸늘한 정도가 아니라 정말 잔인했다. 결국 이게 케이팝의 범주에 대한 각자의 이해 및 해석과, 클럽 문화와 팬덤 문화 간의 일종의 충돌이 원인이지 않았나 싶다.v

케이팝과 ‘국힙’

스큅: 나는 사실 노래들 자체만 놓고 보면 (2일 차에 m3iji가 튼) ‘비밀번호 486’이 통상적인 케이팝의 형태에서 가장 동떨어진 곡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응은 가장 폭발적이었다.

심댱: 슬케파에 온 케이팝애티튜드의 띠오리아는, 가장 큰 호응을 이끌어낸 건 07년대 이후의 케이팝(특히 SMP)이었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비밀번호 486’은 관객 세대를 관통하는 곡이기 때문에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스큅: 동의한다. 그래서 어찌 보면 ‘비밀번호 486’이 역으로 슬케파의 주된 향유자가 누구인지를 잘 드러내 주는 지표 같기도 하다. 90년대 초중반생의, 07년대 이후 소위 ‘2세대 아이돌’의 시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여성.

심댱: 그게 바로 나라서 나는 즐거웠다. (웃음)

스큅: (여성이라는 조건에는 위배되지만) 그래서 나도 즐거웠다. ‘비밀번호 486’ 제일 열심히 따라부른 사람 나야 나…

심댱: 그렇다면 케이팝과 힙합의 접점이 아주 없는 건 아닌데, ‘국힙’에 반응이 적었던 이유는 뭘까?

스큅: 케이팝의 대척점에 놓인 장르가 ‘국힙’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케이팝에서도 힙합을 적극 차용하기에 접점은 작지 않은 편이고, 그래서 ‘비밀번호 486’보다 음악적 코드는 더 맞을지 모르지만, 발화자와 메시지 면에서 케이팝과 완전히 반대되지 않는가. ‘국힙’은 남성 발화자의 자기과시가 주를 이루는 데다 심지어 여성이 자기과시의 수단으로 동원되기까지 하는 곳이고. 그래서 남성 지배적 ‘국힙’ 일반에 대한 생리적인(?) 거부반응이 표출됐던 게 아닌가 싶기도.

심댱: ‘생리적인 거부반응’이라 함은?

스큅: 뭐랄까. 개별곡에 대한 불만보다는 댄스가요도 아이돌팝도 아닌 ‘국힙’이 플레이되는 것에 대한 즉각적인 거부반응이 느껴졌다. 결국 ‘슬케파’라는 바운더리를 형성하는 데에는 어떠한 음악적 특성보다도 감수성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 듯 하다(너무 당연한 소리긴 하지만.) 그리고 이 감수성은 앞서 말했듯 ‘2세대 아이돌’ 시절을 보낸 이들 간의 공감대에서 나오고. “SMP가 남기고 간” 바로 그들.

노동요 = 숨듣명 = 슬케팝?

스큅: 그리고 사실 토요일 세트리스트에도 관객 다수가 모르는 곡이 꽤나 포함되어있었는데, 이때는 그런 불만이 많지 않았다.

마노: 모르는 곡이어도 ‘노동요’라는 형태로 풀어냈기에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적었던 걸까. 아무리 모르는 곡이라고 해도 미친 듯이 빠르게 틀면… (웃음)

스큅: 띠오리아의 말을 다시금 불러오자면, 반응이 뜨거웠던 곡은 결국 ‘포 온 더 플로어 (four on the floor)’로 찍어대는, 소위 ‘빠개는’ 곡들이었다고 하더라. 이 ‘빠갠다’는 게 바로 관객들이 허용하는, 모르는 케이팝의 범주가 아니었나.

마노: 내가 첫날 디제잉을 했을 때, 오프닝이다 보니 소위 ‘빠개는’ 음악을 틀 수 없었는데 ‘안 빠개는’ ‘모르는’ 곡에 대한 반응을 몸소 느끼니 식은땀이 막 나더라.

스큅: ‘슬케팝=빠개는 곡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고. 사실 더 나아가 ‘슬케팝=숨듣명’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양일 걸쳐 슬케파를 완성했던 건 f(x)의 곡들이라 생각하는데.

마노: f(x)는 다들 대놓고 듣지 않나.

스큅: 왜냐하면 f(x)는 존재 자체가 슬픔이니까…

(단체 오열)

스큅: 화제성이 떨어져서, 혹은 케이팝 전반에 대한 ‘숨듣명’이라는 낙인 때문에 조명받지 못한 불운의 명곡도 슬케팝이 될 수 있는 거고. 그런 슬케팝을 트신 것이 에리카였다고 생각한다. 결국 ‘숨듣명’은 슬케팝의 부분집합인데 관객들의 기대치는 대개 (노동요를 위시해 발굴된) ‘숨듣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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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사람들이 늘어가는데 우물은 하나 뿐

스큅: 결국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슬케파가 홀로 너무 많은 것을 떠안은 데에 있었다고 본다. 이런 부류의 행사가 더 다원화되어야 한다.

마노: 사실 주최자인 복길도 인터뷰를 통해서 그런 말을 했었다. 슬케파 파생 트위터 계정이 우후죽순으로 생겼듯이 파생 파티가 생기는 것도 환영이라고.

스큅: 이 정도로 메이저하게 길을 개척한 건 슬케파니까. 사람들이 저마다의 각기 다른 기대를 모두 슬케파에 투영하고 있었다.

마노: 슬케파는 혼자 너무 큰 짐을 떠안고 있다. 앞으로 슬케파에 자극받은 파생 파티들이 탄생할 것이고, 또 그래야 한다. 도쿄만 해도 결과 분위기가 다른 여러 케이팝 파티가 있다는데.

스큅: 노동요-숨듣명 식의 케이팝만 튼다던가 하는 테마별 파티도 있을 수 있겠고, (이미 시도한 곳도 있지만) 팬덤별 파티나 기획사별 파티가 있을 수도 있겠다.

마노: 앞서 말한 ‘카라 나잇’도 그 일환이었고, NCT 팬들이 주축이 되어서 진행한 파티도 있었다. 확실한 것은, 그런 향유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갈증은 언제나 있고 결국 그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우물을 파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목마른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는데 우물이 하나뿐이면 말이 안 되지 않나. 그렇게 늘어난 우물이 조금이라도 이 산업이 밝고 건강하게 바뀌는데 기여하지 않을까 하는 낙관론적인 이야기를 덧붙여본다. 물론 파티가 아무리 늘어나도 전부 ‘슬케파’이길 바란다면 이 역시 썩 바람직하진 않겠다.

심댱: 이제는 팬덤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척해야 한다는 게 결론이 되는 걸까?

스큅: 꼭 특정 아티스트의 팬덤이 아니더라도 되지 않을까. 이번만 해도 케이팝 전반을 즐기는 사람들이 분명 있었다. 물론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건 결국 코어 팬덤(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될 것 같긴 하지만. 여하튼 다양한 시도가 이곳저곳에서 일어났으면 좋겠고, 일어날 것 같다.

마노: 역시나 ‘다양성’으로 귀결된다.

스큅: 이번 슬케파에도 다양성의 미덕이 분명 있긴 했다. 애초에 언제 또 이렇게 갖가지 응원봉들이 한 관객석에서 어우러질 수 있겠는가. 우주소녀 ‘부탁해’가 흘러나올 때 들고 있던 응원봉을 불문하고 모두가 탄식하던 광경을 잊지 못한다. 물론 포용적 태도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마노: 이벤트 간은 물론 이벤트 내 플레이리스트의 다양성 역시 중요하다. 이미 다양한 음악을 틀기는 했지만, 난 솔직히 좀 더 다양해도 될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케이팝 자체가 다양성을 빙자한 혼종이지 않은가. 우리 좀 더 관대해집시다 여러분(메아리).

스큅: 디제이가 아는, 원하는 곡 틀면 분명 신나지만, 조금 더 열린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퍼스널 슬케팝 리스트에 몇 곡 더 추가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은가.

심댱: 나도 덕분에 좋은 곡과 시선을 얻었다.

마노: 디제이는 단순히 음악을 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음악을 큐레이션 해서 들려주는 일도 하는 거니까. 그래서 좋은 곡 알게 되어 감사하다는 반응이 개인적으로 가장 기뻤다. 결국 클럽 문화와 팬덤 문화 양자에 대해 서로 이해하고 있어야 앞으로 이런 행사가 지속적으로 열릴 수 있지 않을까.

스큅: 이번 슬케파의 아쉬운 점은 결국 클럽 문화와 팬덤 문화의 충돌에서 빚어졌고 앞으로 이러한 복잡한 니즈를 헤아려가며 다양한 파티가 기획되어야 할 것이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까.

마노: 적절한 총평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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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슬케파만큼 작금의 케이팝 씬 흐름을 잘 짚어주는 이벤트가 또 있나 싶다”

심댱: 이번 참여진이 여성 위주였다는 것도 짚어볼 만한 지점이다.

마노: 그렇다. 기획진은 전부 여성이었고, 디제이도 8할이 여성이었다. 게스트도 전원 여성!

스큅: 게스트와 함께 진행했던 코너도 각계각층 여성의 플레이리스트를 짚어보는 것이었다. ‘나의 친구들’과 ‘나의 영웅들’을 주제로.

마노: 결국 슬케파만큼 작금의 케이팝 씬 흐름을 잘 짚어주는 이벤트가 또 있나 싶다. 그래서 다들 슬케파에 기대를 하는 것도 있겠고. 슬케파에 케이팝씬의 흐름이 전부 다 들어 있어서?

심댱: 그래서 역시 ‘올콘’이 옳았다는 결론.

마노: (웃음) 가면 오지 않는다!

심댱: 개인적으로 전체 일정을 따라가야 슬케파의 그림이 더 잘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루살이: 역시 일요일도 갔어야… (후회공)

스큅: 그러한 면에서 ‘케이펄스’라는 크루에서 파티를 열고 있던데, 가보는 게 어떠할지?

슬픔의 케이팝 파티 2019 리포트
  1. 토크 세션 1일차 by 하루살이, 심댱
  2. 토크 세션 2일차 by 스큅, 마노
  3. DJ 세트 리뷰 by 마노, 스큅, 심댱, 하루살이
  4. 필진 대담: ‘그래서 슬케파 그게 뭔데?!’ by 마노, 스큅, 심댱, 하루살이

퀸덤: 아무도 이렇게 될 줄 몰랐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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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서바이벌 프로그램 ⟨퀸덤⟩이 종영했다. 프로그램이 발표되었을 때엔 서바이벌이라는 방식에 대한 거부감과 우려의 목소리가 컸으나, 회차가 거듭될수록 SNS를 통해 경연 무대들이 화제에 오르면서 작지 않은 파장을 이끌어냈다. 지난 10월 31일 파이널 생방송 무대와 함께 막을 내린 ⟨퀸덤⟩에 대해 아이돌로지 필진이 감상을 나누어보았다.

10회에 걸친 여정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일단 각자 간략하게 이 방송을 통해 느낀 점을 얘기해보자.

심댱: 초반 ‘컴백 전쟁’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서로 자존심만 다치고 끝나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출연진이 무대에 쏟는 열정과 즐기는 자세는 동료 걸그룹과 시청자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마노: 아무도 이렇게 될 줄 몰랐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이렇게까지 큰 파급력을 가지게 될 줄. 물론 나 역시 이렇게 될 줄 정말 추호도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에 프로그램 기획 의도를 보고 껄끄러움을 느껴 방송을 보지 않기로 결심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우려했던 역기능보다 그에 반하는 순기능이 훨씬 많은 프로그램이었다. 무엇보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여섯 팀의 저력과 시청자들의 뜨거운 지지가 유독 빛났던 프로그램이었다고 생각한다.

랜디: 최근 유일하게 시청한 예능 프로다. 프로들이 자존심을 걸고 펼치는 쇼다운인데 안 볼 수 없었다. 매회 무대 퀄리티에 놀랐다.

서드: 처음엔 방송을 시청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신인도 아닌 걸그룹을 모아서 컴백 무대를 걸고 서바이벌을 시킨다는 발상에 거부감이 들었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무대에 진지하게 임하는 가수들의 모습과 순위를 떠나 평소에 방송에서 보기 힘든 걸그룹끼리의 팀 단위 친목과 케미를 보는 재미가 커졌다. 아마 적잖은 시청자들의 의견도 비슷하리라 믿는다. 처음엔 한 팀을 응원하기로 정해두고 시청했지만, 어느새 출연한 모든 그룹들을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방송이 진행되면서 여러 가지 반전과 인상적인 순간들이 있었다. 퀸덤을 통해 이전보다 더 좋아진 팀 또는 멤버가 있을까.

심댱: 러블리즈의 케이. 이렇게 내면이 야망으로 활활 불타오르는 사람일 줄이야! 적극적인 구애 끝에 화사를 차지한 그를 보면서 ‘인사이더’가 사회에서 통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잘하고 싶은 그 마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모습이 멋져서 이어진 그의 솔로 활동도 자연스레 응원하게 됐다.

마노: 오마이걸 승희. 평소에도 ‘재간둥이’라 불릴 정도로 끼와 능력치가 출중한 멤버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방송을 통해 그야말로 ‘포텐’이 폭발한 것 같다. 매회 리액션 비디오에 비치는 깨알 같은 오디오와 다채로운 표정이 프로그램의 예능적인 재미를 증폭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적재적소에 특유의 순발력으로 재치있게 들어가는 추임새 같은 리액션이 너무 재미있고 좋아서 아예 따로 짤 폴더를 가지고 있을 정도다. 원래도 좋아하는 멤버였지만, 완벽히 출구를 봉쇄당했다.

랜디: 마마무. 멤버들끼리 있을 때의 비글력과는 달리 다른 팀 사람들과 섞이면 한없이 수줍어하더라. 경연 후 다른 팀 퍼포먼스에 진중한 감상 코멘트를 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박봄은 팀으로 봐야 할지 개별로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2NE1이라는 슈퍼그룹으로부터 홀로서기 하며 멤버들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면서도, 에너지 면에서 후퇴하지 않고 결연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개별 멤버는 AOA의 혜정. 퀸덤이 사랑한 예능 영재. 긴장이 가득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가끔 혜정이 허심탄회하게 솔직한 얘기를 풀어놓는 것이 좋았다. 음색과 무대 연기력이 훌륭했다는 것도 새삼 다시 느꼈다.

서드: 오마이걸의 지호. 팀이 여태까지 해왔던 콘셉트에 대한 자신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모습이 돋보였다. 그리고 AOA의 지민. 이전부터 그의 독특한 랩을 좋아했지만, 리더로서 팀을 진두지휘하면서도 분위기 메이커 역할까지 도맡는 모습은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여러 번의 경연 중 인상 깊게 본 무대들을 각자 꼽아보자.

심댱: 2차 사전 경연에서는 오마이걸 ‘Destiny (나의 지구)’. 1차 사전 경연 이후 다들 각성한 듯이 강렬한 무대를 선보였는데, 국악 버전으로 편곡된 ‘Destiny’는 오마이걸 특유의 서정성을 전달하면서도 경연에서 차별점을 불러일으켰다.

3차 사전 경연 ‘팬도라의 상자’에서는 박봄의 ‘눈, 코, 입’이 인상 깊었다. 전주가 시작된 순간 그가 YG에서 빛났던 시간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멀지 않은 추억을 소환해 내는 목소리의 힘을 느꼈다.

마노: (여자)아이들의 ‘LATATA’. 전소연의 천재적인 프로듀싱 능력과 뛰어난 팀워크로 팀의 엄청난 에너지와 존재감을 만천하에 선보였다. 이후로도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샘솟는 아이디어로 팀을 이끈 전소연의 리더십은 물론, 주술사 콘셉트로 각 멤버에게 적절히 스포트라이트를 부여하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오마이걸의 ‘Destiny (나의 지구)’. (여자)아이들에 천재 프로듀서 전소연이 있다면, 오마이걸에는 승부사 지호가 있다는 것을 알리게 된 무대. 한국풍과 국악 편곡이라는 강력한 한 수로 그룹에게 결정적인 반등의 기회를 선사했다. 단 몇 분간의 무대에 풍부한 서사를 불어넣어 덕후들의 심장에 불을 지른 것은 덤.

(여자)아이들의 ‘Fire’. 모두가 아는 명곡을 나름의 해석과 적절한 파트 분배로 재탄생시켰다. 선배 그룹에 대한 애정과 리스펙트가 잘 드러나면서 동시에 팀 특유의 폭발할 듯한 에너지가 돋보였던 무대.

식스퍼즐의 ‘Power’. 원곡의 메시지도 그렇지만, 각기 다른 그룹에 속한 멤버들이 모여 걸파워 시너지를 일으켰다. 그룹도 춤선도 모두 다른 걸그룹 멤버들의 끈끈한 연대마저 느껴졌다.

랜디: AOA가 마마무의 노래를 다시 부른 ‘너나 해(Egoistic)’ 무대. 스패니쉬 기타가 주가 되는 뜨거운 느낌의 원곡과 달리 퓨처베이스 중심의 AOA의 보컬톤에 잘 어울리는 차가운 곡이 되었다. 전체 경연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편곡이었다. 통념을 깨는 팬츠수트 의상과 보깅 댄서 콜라보로 선보인 전복적인 메시지도 탁월했다.

마마무의 ‘I Miss You’. 프로 전체에 걸쳐 순위가 마마무에 너무 유리하게 돌아가서 우등생 응원하듯 긴박감이 덜 하긴 했지만, 역시 마마무는 각 멤버가 각자의 색깔대로 디바(diva)인 드림팀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무대였다. 파워도 감정선 유지도 모두 훌륭했다.

러블리즈의 ‘Cameo’. 편집된 멘트나 자막은 이 무대를 ‘깜찍발랄’ 정도의 수식어로 한정 짓고자 했지만, 이 곡은 원곡부터가 밝으면서도 쓸쓸한, 복잡한 감정을 담은 노래다. ⟨글리(Glee)⟩풍으로 다채롭게 꾸민 무대 구성과 편곡이 이런 곡의 감상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었다.

서드: 오마이걸의 ‘Destiny (나의 지구)’. 유튜브나 SNS에서 오마이걸에 대한 언급량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게 체감될 만큼 팀이 지닌 능력과 장점이 십분 발휘된 무대이며, 이후 경연에서 자신들의 무대에 대한 자신감이 커진 모습 또한 뚜렷이 보였으니, 여러 모로 오마이걸에게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또 AOA의 ‘너나 해 (Egotistic)’ 역시 원곡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지금의 AOA라는 팀이 지닌 강점이 무엇인지 대중을 설득하는 데에 성공한 무대라고 생각한다.

러블리즈의 예인이 ⟨친절한 금자씨⟩의 OST를 현대무용을 바탕으로 재해석한 퍼포먼스 무대 또한 인상적이었다.

경연과는 별개로 인상적인 순간, 또는 최고의 장면이라 할 만한 게 있다면?

심댱: 선곡 회의를 포함해 녹음, 안무 연습 등 무대를 준비해온 과정들. 빛나는 무대를 만들기 위한 아티스트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은 물론 그들의 노력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비슷한 이미지 콘셉트로 고민했던 러블리즈와 오마이걸, 그리고 유쾌하게 연습에 임했던 AOA의 비하인드를 즐겁게 보았다.

마노: 히트곡 경연 때, AOA의 무대를 지켜보던 승희가 단말마처럼 외친 “이건 아니지~!”. 오디오와 비디오 양쪽으로 아낌없이 리액션을 불어 넣은 모든 순간이 인상적이었지만, 특히 이 장면으로 ‘프로 리액터’로서의 존재감을 떨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단연 최고의 순간이라 꼽고 싶다. 이후로도 수많은 짤방과 밈을 양산하며 모두에게 두고두고 사랑받은, 사랑스럽고 재주 많은 ‘리액션 장인’의 탄생을 알린 순간. 자매품은 “저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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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2화 ‘효뿌엥’. 첫 1위를 안겨준 소중한 노래 ‘비밀정원’을 지키고 싶었던 리더의 눈물. 7화 보컬 디렉터로서 박봄의 모습. 경연 참가자지만 경력으로 보면 되려 참가자들을 가르쳐야 할 사람이다. 효정과 함께 꾸민 콜라보 무대 준비 과정에서 이 모습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서드: 러블리즈 케이와 마마무 화사가 경연 파트너가 되어 서로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보여준 모든 순간들. 아마 ⟨퀸덤⟩이 아니었다면 평생 보지 못했을지도 모를 장면이었다. 전혀 다른 외모와 성격, 음색을 지닌 두 사람의 하모니를 즐길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좋았다.

파이널 생방송 경연곡과 무대 얘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AOA – Sorry

랜디: ‘너나 해’ 재해석 무대의 히트가 신곡에 미친 영향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그 무대를 좋아했던 입장에서 더 신이 난다. 전성기와 비교할 때 분명 그룹을 상징하던 메인보컬의 부재라는 치명적인 빈자리가 있었지만, 지금은 5인이 완전히 각자의 자리를 찾아 꽉 들어맞는 퍼즐처럼 채워졌다. 댄스유닛으로 발군의 퍼포먼스 실력을 보인 찬미가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연기를 보일 때는 퀸덤을 통해 얻은 모든 기회를 마지막까지 불태우고 가겠다는 결의가 느껴졌다.

심댱: 음원에서의 인상과 무대의 간극이 컸다. 장르로 따지자면 현대극에 더 가까운 메시지라 느꼈기 때문일 지도. 그러나 무관심해진 상대에게 퍼붓는 메시지는 화려한 액션신과 변명을 밀어내는 듯한 안무 등으로 구현되어 거친 서부영화의 한 장면으로 멋스럽게 연출되었다. AOA의 야심이 일궈낸, 볼거리가 가득한 무대가 ⟨퀸덤⟩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러블리즈 – Moonlight

랜디: 이제까지 러블리즈가 선보여온 마이너 감성은 ‘서늘한 가운데 느껴지는 불꽃 같은 정념’이 주를 이뤘다면, 이번에는 사운드에까지 변화를 주며 좀 더 모던한 느낌으로 탈바꿈했다. 전자음악 1세대 윤상의 곡 제공에도 불구 이제까지는 고집스레 쓰지 않았던 특정 사운드가 있었는데(예: 트로피칼에 주로 쓰이는 마림바 신스 등), ‘Moonlight’는 그런 불문율을 깨서 좀 더 트렌디한 가요처럼 들렸다. 일사불란한 러블리즈표 군무와 짝을 이루니 더 아름다웠다.

마노: 특히 초창기의 러블리즈는 마치 우리의 곁에 있을 것만 같은 소녀를 연기해왔는데, 변화한 사운드에 발맞춰 콘셉트 역시 신비로우면서 ‘인외적’인 느낌을 더해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 속 무사이(뮤즈)들이 달빛 아래에서 펼치는 가무를 보는 것 같았달까. 팀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변화와 진화를 꾀하는 데 성공했다.

박봄 – 되돌릴 수 없는 돌아갈 수 없는 돌아갈 곳 없는

서드: 발라드 위주의 선곡만을 해오다 조금이나마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무대를 선택했다. 제목부터 가사까지 ⟨퀸덤⟩에서 박봄이 겪고 느낀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듯한 노래도 인상적이었지만, 4개의 스탠드 마이크를 이용해 2NE1 시절 무대를 떠올리게 만드는 연출은 보는 이를 울컥하게 할 만큼 임팩트 있었다.

심댱: 과거의 박봄과 지금의 박봄을 거울처럼 배치한 시작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그리움이 뚝뚝 묻어나는 타이틀과 지난날을 넘어 홀로 성장할 그를 보여주기에 적절한 피날레 혹은 발걸음으로 보였다.

마노: ⟨퀸덤⟩에서 박봄은 홈그룹 2NE1에 대한 그리움과 솔로로서의 외로움을 가감없이 드러내곤 했다. ‘한’ 무대를 마치며 2NE1의 핸드 사인을 선보이는 순간이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곡이었기에 가사나 무대 장치에서 홈그룹의 자취를 남겨놓아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자극했다. 그룹으로서의 귀환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바라게 된 순간.

오마이걸 – 게릴라

심댱: 오마이걸이 보여줄 수 있는 ‘매운’ 무대였다. 날렵한 춤선, 나긋나긋하게 시작하는 보컬이 방대한 스케일과 설정을 만나 깊은 밤 숨소리를 죽이며 공모하는 게릴라로 재구성되었다. 결연한 자세로 작전을 지시하는 모습은 마치 ⟨퀸덤⟩ 경연을 통해 대중의 마음을 공략해온 그들의 모습과 겹쳐졌다. 마침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오마이걸은 ⟨퀸덤⟩ 바깥에서도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니 계속 ‘Attention’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드: 그동안 해오지 못했던 음악과 콘셉트에 대한 멤버들의 갈망이 선명히 드러나는 무대였다. 도입부 밧줄을 이용한 퍼포먼스는 “폭풍전야”라는 가사에 맞춰 일렁이는 파도처럼 보이기도 하고, 멤버들이 줄의 위아래로 드나들 때면 마치 사각의 링 위로 들어서는 듯한 느낌도 주는 독특한 무대연출이었다. 오마이걸을 지켜봐 온 이들이라면 굉장히 낯설게 다가오는 이미지이기도 하겠지만, ‘비밀정원’으로 시작해 ‘Destiny (나의 지구)’를 지나 3차 경연 ‘Twilight’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생각한다면 꽤나 자연스러운 도착점이다. 어쩌면 오마이걸에게는 다섯 번째 계절을 지나 또 한 번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분기점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마노: 사전에 공개된 음원을 통해 SNS상에서는 ‘여섯 번째 계절’이라는 우스개 아닌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무대였다. ‘비밀정원’-’다섯 번째 계절’로 이어져 온 ‘오마이걸다운’ 서정성을 지켜낸 동시에, 콘서트 등에서만 선보여왔던 치명적이고 강렬한 느낌을 더해 오마이걸의 성장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승희의 말대로 오마이걸은 ‘성장형’ 그룹이라는 것을 다시금 못 박았다.

(여자)아이들 – Lion

랜디: (여자)아이들의 ‘Lion’은 최고의 무대에 꼽고 싶을만큼 좋았다. 직접 작사작곡을 해야 하기에 프로그램 시작과 동시에 작업에 들어갔다고 해 더 놀라움을 자아냈다. 참가자 중 가장 어린 팀이지만 무대를 호령하는 에너지와 메시지는 중견 그룹도 쉽게 낼 수 없을 만한 것이었다. “뻔한 리듬을 망치고” 같은 전소연식 가사 작법이 이번에도 돋보였다. ⟨퀸덤⟩ 제작진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제왕의 노래, ‘퀸’의 노래였다.

서드: 다른 경연곡과는 질감부터 다른 무대였다. ⟨퀸덤⟩이라는 방송 제목에서 테마를 맞춰 기다렸다는 듯 성대한 마지막 무대에서 스스로 왕관을 쓰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싫다고 말해’ 같은 무대를 비롯해 전소연과 멤버들이 보여준 야심 찬 모습들을 되새기다 보면 이들이 과연 데뷔 갓 2년 차를 향해가는 걸그룹이 맞는지 혼란스러울 지경. 경연을 위한 1회성으로 소비되기엔 너무 아까운 노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고 역시 그 스케일에 걸맞는 웅장함이 돋보인다. 정식 활동곡이 아님에도 아마 (여자)아이들의 커리어에 있어서 오랫동안 회자되고 기억에 남을 노래가 될 것이다.

마노: 전소연이 경연 전 모 매체의 인터뷰를 통해 ‘지금까지는 멤버들에게서 영감을 얻었지만, 이번 곡은 나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것이 완전히 납득되는 순간이었다. 특히 여성의 저음을 우아하게 잘 쓰는 것으로 정평이 난 전소연의 송메이킹 및 프로듀싱 능력이 그야말로 폭발해버렸다. 여섯 멤버들이 왕좌에 오르는 모습에는 소름이 돋으며 동시에 눈물이 왈칵 흐르고 말았다. 오프닝 무대에서 선보인 “그래 그 왕관을 내놔/맞아 그 퀸이 나야”라는 전소연의 랩 한 소절이 떠올랐다. 결국 스스로 왕관을 쓰며 ‘퀸’으로 군림한 모습을 보며, ‘진짜 1위’를 가린다는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를 반문하게 됐다. 프로그램이 주지 못한 왕관 대신 직접 거머쥔 왕관으로 성대하게 치른 대관식을 본 것만 같았다.

마마무 – 우린 결국 다시 만날 운명이었지 (Destiny)

서드: AOA가 황무지를 배회하는 현상금 사냥꾼 같았다면, 마마무의 무대는 여관에 딸린 선술집에서 모자를 눌러쓰고 앉아 기타를 연주하는 외로운 음유시인 같았다. 4인조라는 멤버 구성이 전혀 부족하지 않은 마마무의 뛰어난 퍼포먼스 연출은 ‘Good Luck’ 때와 마찬가지로 뚜렷이 드러나는데, 백댄서를 마치 무대 장치처럼 활용하면서 각자의 파트마다 마치 뮤지컬 영화의 장면전환을 보는 듯한 구성이 훌륭했다. 처음 듣는 노래의 후렴인데도 현장을 넘어 TV로 지켜보고 있던 사람까지도 떼창에 참여하고 싶게끔 하는 무대 매너와 흡인력은 말할 것도 없다.

심댱: 후렴구의 챈트를 듣는 순간 ‘이건 반칙이지!’ 싶었다. 관객의 연호로 이어진 강렬한 챈트는 현장 무대에 긴장감을 부여하는 한편 마마무의 특장점인 ‘소통하는 무대’를 실현하는데 유효했다. 분위기를 주도할 줄 아는 이들이 퀸덤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당연해 보여도 누구든지 납득할 만한 그림이었다.

퀸덤: 주인공들의 종영 후로 이어진다.

퀸덤: 주인공들의 종영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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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서바이벌 프로그램 ⟨퀸덤⟩이 종영했다. 프로그램이 발표되었을 때엔 서바이벌이라는 방식에 대한 거부감과 우려의 목소리가 컸으나, 회차가 거듭될수록 SNS를 통해 경연 무대들이 화제에 오르면서 작지 않은 파장을 이끌어냈다. 지난 10월 31일 파이널 생방송 무대와 함께 막을 내린 ⟨퀸덤⟩에 대해 아이돌로지 필진이 감상을 나누어보았다. 퀸덤: 아무도 이렇게 될 줄 몰랐던에서 이어진다.

각 그룹이 퀸덤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박봄에 대하여

랜디: 박봄을 동경하며 자란 후배들로부터의 피부로 느껴지는 단단한 지지. 혼자 몸으로 긴 공백 끝에 컴백한 그이기에 이런 것이 특히 필요했을 것 같다.

서드: 출연진 중 유일한 솔로 가수였기에 퍼포먼스까지 선보여야 하는 경연 룰 안에서 내내 불리해보인 것도 사실이다. 박봄은 그만큼 외로워 보이기도 했고 다른 팀을 보며 2NE1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모습도 자주 내비쳤지만, 그 감정을 부정하거나 애써 참지 않고 오히려 경연을 통해 쏟아내면서 인상적인 무대들을 선보였다. 박봄 스스로 말했듯 솔로로서 한 단계 성장하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여자)아이들의 ‘한’을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해석한 커버 무대는 의외의 일면이자 훌륭한 무대였다.

오마이걸에 대하여

심댱: 오마이걸다움. 무대 안에 서사를 녹이면서도 오마이걸 특유의 서정성을 고르게 전달했다. 자기 색깔만큼은 확실히 표현해낸, ⟨퀸덤⟩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드: 데뷔 초기부터 팀을 응원해온 팬의 입장에서는 그간 오마이걸이 부지런히 갈고 닦은 것들을 경연을 통해 대중이 발견하고 인정해주는 것이 무척 기쁘면서도 ‘이제서야’라는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5년 만에 “찾았다, 오마이걸!”이라는 인사 구호의 의미가 리부트 되었다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마노: 최근 들어 소위 ‘걸크러시’ 콘셉트가 대대적인 인기를 끌고 있어 아마 그룹 내적으로 고민이 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이 가장 잘 하는 것을 꿋꿋이 밀고 나가 끝내 시청자들을 설득해냈다. ⟨퀸덤⟩을 통해 오마이걸의 진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끝없는 포텐셜을 갖고 있음을 만천하에 알렸다. 어쩌면 첫 무대로 선보인 ‘비밀정원’에 심어둔 “멋지고 놀라운 것”은 아직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AOA에 대하여

심댱: 8년 차 걸그룹 AOA의 방향성. 프로듀서 지민이 만든 판에 스스로를 “꽃이 아닌 나무”라고 호명한다. 프로그램 중 화제를 불러일으킨 ‘너나 해’ 무대는 AOA의 자신감에 이유를 부여했다.

랜디: 스펙트럼의 확장. 긴 시간 활동했고 다수의 히트곡을 보유한 팀이었는데도, 우리는 이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이렇게 많았다.

마노: 누가 뭐래도 ⟨퀸덤⟩의 가장 큰 수혜자. 두 멤버의 공석과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함을 온 세상에 당당히 알렸음은 물론, 화제의 ‘너나 해’ 무대로 이미지 반등의 기회까지 얻었다. 그룹의 새로운 막을 올렸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러블리즈에 대하여

랜디: 드디어 찾아온 무대 프로듀싱 참여의 기회. 연차는 오래 됐지만 회사에서 이런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아서, 초반에는 여태 다수의 무대를 자신들의 아이디어로 꾸려온 그룹들과 경쟁하며 마치 후발 주자처럼 헤매야 했다. 중반을 지나며 드디어 궤도에 오른 모습에서 벅찬 느낌을 받았다. 여전히 엠넷의 악의적인 편집의 피해자였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만.

마노: 팀의 성장. 최근 들어 소위 말하는 ‘걸크러시’가 인기 콘셉트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팀의 고뇌가 가장 컸을 것이다. 방향을 급선회하는 강수를 두어가며 시행착오를 거치다, 결국 본인들이 가장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밀어부치게 된 일련의 과정에서 팀의 성장서사를 읽을 수 있었다. 어쩌면 러블리즈의 진화는 이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여자)아이들에 대하여

랜디: 서바이벌이 낳은 괴물, 일명 ‘서낳괴’ 전소연의 홈그룹은 전소연이 다가 아니었다는 더 무서운 사실. 보컬 유닛에서 보여준 민니의 음색과 곡 해석력, 퍼포먼스 유닛에서 보여준 수진의 파괴적인 표현력 등, 신인이라고는 믿기 힘든 무대를 연달아 선보였다. 무대를 준비하며 토론하고 협동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서드: 경연 무대를 꾸미는 과정을 담은 비하인드 컷을 보고 싶은 팀 1순위. 단순히 전소연이 작사, 작곡을 한다는 사실에 감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어떤 식으로 곡을 만들어가고 멤버들과 합을 맞추어 콘셉트를 다듬어 발전시키는지, 그 노하우를 더 알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퀸덤⟩은 아이디어를 우직하게 밀어붙이면서도 멤버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팀워크를 만들어내는 전소연과 (여자)아이들의 존재를 더 많은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시키는 발판이 되었다.

마마무에 대하여

서드: 약점을 찾기 드문 팀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재확인 했다는 점. 그들에게 ⟨퀸덤⟩은 단순히 탄탄한 보컬을 지닌 것을 넘어 무대 장악력 또한 뛰어난 팀이며, 그렇기에 음원강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리였다. 또 화사와 러블리즈 케이 두 사람이 앞으로도 더욱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랜디: 워낙 보컬에 강점이 있는 팀이라 경연에 강할 거라 예상은 했다. 프로그램을 거치며 그런 그룹의 색깔이 그냥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 각자가 자기 영역을 깊이있게 고민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시청자로서 가장 큰 소득이었다.

심댱: 출연진에게서 가장 많이 사랑받은 아티스트는 마마무이지 않았을까. 화사가 유닛 미션의 키 멤버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멤버 개개인에 관심이 쏠린 것은 물론, 다른 팀들이 눈독들였던 활동 곡은 대부분 마마무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팬들만큼이나 아티스트도 사랑한 그룹. 마마무는 더 자신해도 될 만한 근거를 퀸덤에서 찾지 않았을까.

⟨퀸덤⟩ 시즌 2가 방영한다고 가정했을 때, 출연했으면 하는 팀은?

서드:
에이핑크 – 9년 가까이 팀워크를 맞춰온 장수 걸그룹이라는 자체가 무기다. 그동안 멤버 각자 담아두었지만 표현하지 못한 비전들이 있을 것 같은데 궁금하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 – 역시 독보적인 콘셉트와 실력으로 무장한 팀이니 만큼 경연에서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완전체로서 공백기가 길었던 만큼 이런 무대에서 그동안 묵혀둔 응어리를 마음껏 쏟아낼 수 있지 않을까.
우주소녀 – 10인 이상의 다인원 그룹이 어떤 전략으로 무대를 장악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군무와 보컬, 랩까지 퍼포먼스에 있어 다채로운 장점을 지닌 팀이기에 출연한다면 진가를 보여줄 것 같다.

랜디:
CLC – (여자)아이들과 같은 회사지만 다른 강점을 가진 팀이다. 승연과 유진을 필두로 보여주는 파워풀한 힙합 군무를 ⟨퀸덤⟩ 무대에서도 볼 수 있길 기대한다.
구구단 – 시즌1의 컨셉돌이 오마이걸이었다면 시즌2는 구구단이 될 거라 확신한다(출연만 한다면). 본래도 다양한 시도를 약속하며 극단 콘셉트로 나온 팀이며, 원조 컨셉돌 빅스의 직속 후배이기도 하다.
브레이브걸스 – 댄스 유닛 경연 때 박봄을 지원하러 나온 은지의 홈그룹. 2017년에 나온 ‘Rollin’’은 아직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케이팝 명곡. 메인보컬 민영의 중독적인 보컬은 꼭 재평가 되어야만 한다.

심댱:
에이프릴 – ‘청순계’로 일컬어지는 걸그룹 중 하나. 그러나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 속 ‘여주다’처럼 새로운 자아를 찾을 연차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
청하 – 현재 착실히 실력과 인지도를 쌓고 있는 솔로 아티스트. 무대 장악력도 뛰어나서, ⟨퀸덤⟩ 무대 위에 펼칠 그의 역량을 확인하고 싶다.
라붐 – ‘상상더하기’, ‘푱푱’같이 통통 튀는 발랄함만 기억한다면 오산. 2018년 하반기 ‘체온’을 기점으로 끈적하면서도 애틋한 기조를 유지하는 라붐의 2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한다.

마노:
드림캐쳐 – 종영 전부터 SNS 등을 통해 요청이 빗발쳤을 만큼 매니아층이 두텁고 확실한 그룹이다. 여타 케이팝 걸그룹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단연 독보적인 콘셉트를 매번 훌륭히 소화해내고 있는 것은 물론, 콘서트와 공식 유튜브 채널 등에서 선보인 다양한 콘셉트의 커버 무대 역시 수준급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방송을 통해 그룹의 진가와 숨은 매력이 잘 드러났으면 하는 마음.
위키미키 – 당돌하고 에너제틱한 소녀상을 선보이며 걸그룹계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가진 팀. 유정과 도연이라는 뛰어난 키플레이어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위키미키만의 에너지로 재탄생할 무대가 궁금해진다.
이달의 소녀 – 무려 12명이라는 다인원을 보유한 그룹이며 동시에 2년 여에 걸친 기간 동안 솔로 싱글을 각 멤버별로 발매하며 역대급 규모의 프리 데뷔 과정을 거친 팀. 다인원이라는 자원을 최대치로 살린 역동적이고 입체적인 무대로 국내외로부터의 지지가 두텁다. 모든 멤버가 솔로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지녔기에 이들이 선보일 무대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퀸덤⟩이 남긴 것, 그리고 만약 있을지도 모를 시즌 2에 기대하는 점이라면

심댱: 모두가 주인공이 된 쇼였다. 본인보다 ‘한 수 아래’를 꼽는 등 의도적으로 캣파이트를 유도한 경연방식을 뛰어넘어 무대 위에서는 대중에게 미처 알지 못했던 아티스트의 잠재력이, 무대 아래에서는 서로를 향한 뜨거운 박수가 ⟨퀸덤⟩에 남았다. 진정한 퀸의 모습을 보여준 그들이 방송 종영 후에도 주목받기를 기대한다. 사실 이번 출연진만큼이나 주목받아야 하는 퀸들이 많아 제2, 3의 ⟨퀸덤⟩을 보고 싶은데, 개인적으로 넓은 공연장에서의 미니 콘서트 등 우승 특전을 강화해, 참여할 이유가 크고 뚜렷하면 더 좋을 것 같다.

마노: 지난 회차를 되돌이켜보며 곰곰히 곱씹어보니, ⟨퀸덤⟩은 모든 그룹에게 있어 일종의 ‘성장 여정’이지 않았나 싶다. 모두가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스스로의 장점과 잠재력을 깨우쳐가는 과정을 시청자들도 함께 지켜본 것이다. 동시에 보이그룹에게는 상대적으로 너그럽게 허용되는 시행착오의 기회가 걸그룹에게는 유독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퀸덤⟩의 존재 의의는 걸그룹이 시행착오를 하고 ‘실수’를 하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마음껏 부여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것을 시도할 수 있는 리스크를 완충해주는 장치가 ⟨퀸덤⟩이라는 프로그램이었던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퀸덤⟩은 분명 지속될 가치가 있다. ⟨킹덤⟩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 역시 바로 여기에 있다. 오롯이 여성들이 주역이 되어 그들만의 단단한 연대를 이루어냈다는 점도 이 프로그램의 큰 의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여성들의 끈끈한 ‘카르텔’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기에 지속됐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하는 김에 시즌 2를 할 거라면 66 하차 제도와 한 수 위·아래 시스템은 제발 폐지하자. 시작은 캣파이트를 노렸으나 끝은 결국 ‘하트시그널’로 마무리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덤’ MC도 꼭 교체를 해주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 역시 있다. 다들 무슨 뜻인지 아시죠…) 어쨌거나, ⟨퀸덤⟩은 지속되어야 한다. ‘Queendom must go on’.

랜디: ⟨퀸덤⟩이 잘 만든 프로가 된 이유는 주인공이 여성 아이돌이기 때문이었다. 여성 팬들의 생산과 소비를 주축으로 성장 서사에 기반한 팬 콘텐츠가 넘치는 남성 아이돌과는 달리, 여성 아이돌은 헌신적 팬덤의 규모가 비교적 작다. 그대신 대중의 단편적 소비가 그룹에 끼치는 영향은 압도적이다. 사회가 여성을 소비하는 기울어진 방식과 닿아있는 부분. ⟨퀸덤⟩은 그런 이중고를 겪는 여성 아이돌들이 음악과 무대를 만드는 과정, 그 안에서의 관계 조율, 그들이 느끼는 무대 뒤의 감정선까지 담아내며 여성의 성장 서사 ‘떡밥’을 제공한 프로이기 때문에 훌륭했다. 매회 레전드를 갱신한 무대 퀄리티는 말할 것도 없고. 이 훌륭함을 계속 해서 이어가려면 시즌2도 여성 아이돌이 출연해야 할 것이다. 상기한 추천팀들이 나오는 시즌2, 생각만해도 설렌다. ⟨킹덤⟩은 필요 없다.

서드: 걸그룹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콘셉트로 무대를 꾸밀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없었는지 새삼스레 생각하게 되는 프로그램이었다. 방송을 끝까지 보고 나니 서바이벌이라는 방식이 부정적으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여자)아이들의 전소연이 다음 무대를 준비하며 열의를 불태우는 모습, AOA 지민이 순위에 연연하지 않는다면서도 한 편으로는 발끈하는 모습 등은 예능적으로 재미를 주는 요소가 되기도 했고, 선의의 경쟁심이 팀마다 멤버들의 의기투합 계기가 되기도 했다. 2회 연속 최하위 팀의 방송 하차 같은 극단적인 룰보다는 꼴찌 팀에게 모종의 어드밴티지를 주어 거꾸로 반등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방식은 어떨까.
만에 하나 다음 시즌이 나올 수 있다면 프로그램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룰을 개선하고, 더 많은 걸그룹이 정규활동 외에 스스로 꾸미고 싶은 무대를 만들어갈 수 있는 자리로서의 방송이 되었으면 한다.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가며 따로 시간을 내어 경연을 준비하는 일이 가수에게 체력적, 정신적 부담을 준다는 팬들의 우려도 많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방송사와 기획사 간에 좀 더 아티스트를 배려하는 스케줄 조정을 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Release : 2020년 1월 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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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Gang
2020년 1월 2일
TOP 미디어
    
Countdown
2020년 1월 2일
KJ 뮤직 엔터테인먼트
    
2019년 겨울 첫눈으로 만든 그댈 2020년 눈으로 다시 만들 순 없겠지만
2020년 1월 2일
미스틱 엔터테인먼트, 에이팝 엔터테인먼트
    
미묘
2020년 1월 2일
넓은벌동쪽
    
샤워 (Sh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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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Part 6
2020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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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억의 여자 OST Part 6
2020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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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 My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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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elease : 2020년 1월 초순
  2. Release : 2020년 1월 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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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ease : 2020년 1월 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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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In The Apple
2020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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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Tuzi: (위 투지)
2020년 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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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할개 Part 7
2020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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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랜 꽤 오래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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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X2=6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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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p Of The Soul: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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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elease : 2020년 1월 초순
  2. Release : 2020년 1월 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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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ft : SF9 – First Collection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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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첫 정규 앨범이다. 이제껏 쌓은 경험치를 바탕으로 자신 있는 것만 살뜰히 모아 만들었다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남자 댄스 아이돌의 이미지를 아주 서툴게 콜라주 하던 데뷔 초를 되돌아보면 과장 조금 보태서 기적 같은 발전이다.

‘Good Guy’의 도입부터 무엇을 좇는지 명백하다. ‘질렀어’와 상당히 유사한 톤과 구성이 이어진다. ‘질렀어’ 후렴 직전의 드롭처럼 케이팝 문법에 기반한 예측을 비껴가는 센스는 부재하지만, 대신 피아노로 기둥을 세우고 보컬 레이어를 풍부히 쌓아 밀도를 높였다. 멤버들의 역량에 비해 늘 아쉬웠던 보컬 운용도 개선되었다. 개성 있는 음색들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는 재윤과 서늘함을 자아내는 로운이 들린다. 다원의 예쁜 비성도 귀를 끄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후렴을 한두 사람이 완창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모두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안무에서 드디어 특색이 보인다는 점도 짚고 넘어갈 부분이다. 정중하게 인사하는 포즈로 시작해, 동작을 잘게 쪼개기보다는 절제하고 비워냈다. 여기에 정장까지 갖춰 입어 묵직하고 긴 선이 돋보인다. 2절의 로운 파트에서는 걷기만 해도 볼 맛이 난다는 신체적 장점을 극대화한다. 효율적으로 흘러가는 동선마저 우아함을 추구한다. 기술적인 난이도와 별개로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수록곡도 “First Collection”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각 곡의 원류가 쉽게 떠오르는 동시에 균질적인 분위기를 유지한다. 팬덤 내에서 꾸준하게 호응이 이어진 ‘머리카락 보일까’를 닮은 ‘One Love’나 ‘Fall In Love’, ‘Never Say Goodbye’와 같은 맥락의 ‘널 꽉 잡은 손만큼’, ‘더 잔인하게’ 등으로 니즈를 충족시킨다. 품위 있는 섹시를 위해 무게감을 꾸준히 유지하다가 ‘춤을 출 거야’, ‘Beautiful Light’에 와서는 상쾌하게 마무리한다. 코스요리의 마지막 레몬셔벗 디저트 같다고나 할까. 매끄럽게 구색을 맞췄다. 귀에 가장 맴도는 곡은 ‘Shh’와 ‘타’. 재밌는 그루브 위에 멜로디가 자연스럽다. 무대가 기대된다.

다만 전반적인 가사의 정서가 어쩐지 ‘하루’보다는 ‘오남주’를 연상케 한다. 지극히 전형적인 설정과 표현에서 오는 이 오글거림의 미학이 2020년에도 통용되는지는 재고해 볼 문제다. 세련된 사운드와 유치한 가사의 간극도 처참하다. 그럼에도 <킹스맨>과 <오란고교 호스트부> 사이 갈팡질팡하는 콘셉트의 조악함이 무마되는 것은 역시 퍼포머의 침착한 태도 덕이겠다. 결론적으로 이 서늘한 자태와 등온한 가사를 염원한다. 부디 얼토당토않은 퇴보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를.

스큅:

데뷔 5년 차의 첫 정규앨범이다. 정규앨범을 내기까지 걸린 기간만큼이나 팀 정체성 확립에 오랜 난항을 겪어온 SF9은 마침내 그 해답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타이틀곡 ‘Good Guy’는 국내외로 좋은 반응이 있었던 ‘질렀어’의 짙은 관능을 ‘오솔레미오’의 맵시로 말쑥하게 정돈하여 보여준다. (“‘오솔레미오’와 ‘질렀어’의 중간 지점을 했으면 좋겠다”던 인성의 바람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수트 차림으로 선보이는 UK 개러지 하우스의 매무새는 중구난방이었던 팀 역사의 틈새를 파고드는 동시에 시원시원한 피지컬과 안정적인 보컬로 대표되는 멤버들의 기량을 효과적으로 조명한다.

‘Shh’와 ‘타’ 등의 수록곡 역시 팬들이 기대하던 신사적인 섹시함, 소위 ‘청담 섹시’를 우직하게 구현해 보이며 SF9이 드디어 궤도에 진입했다는 인상을 준다. SF9이 현재 거두고 있는 소기의 성과는 이에 대한 긍정적 피드백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다만 이 ‘청담 섹시’가 과연 <킹스맨>도 아닌 <오란고교 호스트부> 식의 콘셉트로 풀어져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문이 남는다. 이 콘셉트는 상당 부분 작사에서 기인하는데, 크레딧을 확인하며 10곡의 수록곡 중 8곡의 작사에 참여한 한성호 대표가 <미남이시네요>, <상속자들>의 OST를 작업한 당사자였음을 상기하게 된다.

다소 케케묵은 감성을 환기해주는 것은 멤버들이 주도적으로 작사한 9, 10번 트랙. 가사의 결 자체는 비슷하지만 ‘가오’라 칭할 수 있는 부담스러운 무게감이 한껏 덜어져 기껍게 들을 수 있다. 멤버들에게 더 마이크를 쥐여주었더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쉬운 지점은 여전히 남아있으나, 오랜 연구 끝에 그룹의 타개책을 찾아냈다는 것만으로 큰 의미가 있는 앨범.

“First Collection”은 SF9에게 끝끝내 부여된 공전축과도 같다. “First Collection”을 구심점 삼아 그룹의 활로를 모색해나갈 SF9을 기대해본다. ‘오솔레미오’ 뒤에 ‘맘마미아’로, ‘질렀어’ 뒤에 ‘예뻐지지 마’로 궤도 이탈을 해버린 실수를 다시는 답습하지 말기를.

SF9
First Collection
FNC 엔터테인먼트
2020년 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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